정치-문화영역 자율성 강조하는 학자2인“경제결정론은 아니다”

  • 입력 2007년 12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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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이다. 마르크스 식 표현을 따르면 ‘토대(경제)가 상부구조(법 정치 제도 문화)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한국에서 정책과 이념보다 경제가 최대 화두가 된 현실은 이를 대변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출발했으나 경제결정론을 부인하고 ‘정치’와 ‘문화’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서구이론가 2명의 책이 최근 나란히 나왔다. 상탈 무페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과 제프리 C 알렉산더 미국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적 삶의 의미’(한울아카데미)다.

무페 교수는 1985년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전략’(한국어판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을 펴내며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한 학자로 불린다. 상부구조의 역할을 강조한 헤게모니 이론을 펼친 그람시의 네오마르크스주의를 주축으로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과 계급투쟁론을 비판한 정치철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가 1988∼1992년 발표한 9편의 논문을 모은 책이 ‘정치적인 것의 귀환’. 여기서 ‘정치적인 것’이란 나치즘 이론가인 카를 슈미트가 자유주의정치철학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개념이다. 슈미트는 토론을 통한 합리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믿는 자유주의 정치관에 맞서 갈등과 적대를 본질로 하면서 절대 길들여질 수 없는 인간본성을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으로 규정했다.

무페 교수는 슈미트의 총론에는 반대하면서도 그 각론으로서 ‘정치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라는 적이 사라진 뒤 자유주의가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갈등의 폭발에 직면한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의 마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타인의 규정으로 이뤄지므로 적대 관계의 상실로 인해 붕괴되는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욕망에서 새로운 적대를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치의 의미를 축소·제거하고 시장을 통해 정치적 갈등을 풀려는 자유주의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대안은 반(反)정치가 아니라 정치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알렉산더 교수는 베버와 뒤르켕을 통해 경제결정론을 뒤집는다. 그는 자본주의의 출현에 프로테스탄티즘이란 종교가 핵심역할을 했다는 베버와, 상징과 의례를 중시하는 종교사회학에 심취한 뒤르켕의 전통을 복원해 문화를 사회구조의 부차적 산물로 바라보는 전통사회학에 도전한다.

그 이론의 파격성은 사회변동에서 문화의 역할을 독립변수로 보는 ‘강한 프로그램’과 종속변수로 보는 ‘약한 프로그램’을 대조하는 데서 확인된다. 약한 프로그램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 푸코의 지식권력론, 영국의 문화연구이론을 망라한다. 강한 프로그램은 기호학과 해석학을 끌어들여 사회변동에서 문화의 독자적 역할에 주목한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알렉산더 교수는 약한 프로그램을 ‘문화분과 사회학(sociology of culture)’이라고 칭하고 강한 프로그램만을 ‘문화사회학(cultural sociology)’이라고 명명한다.

‘사회적 삶의 의미’는 문화사회학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그가 발표한 8편의 논문을 모은 책이다. 그는 여기서 수많은 대량학살 가운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만이 인류의 문화적 외상으로 각인된 이유와, 사회통합을 위한 시도가 필연적으로 사회악을 탄생시키는 문화적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특히 워터게이트 사건을 타락한 미국 민주주의를 구원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적 정화(淨化)의식으로 분석하며 “스캔들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통찰도 함께 펼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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