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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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석유 전략을 파헤친 저자는 이라크전쟁은 사실상 석유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사진은 이라크 유정의 불기둥과 미군 병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의 석유 전략을 파헤친 저자는 이라크전쟁은 사실상 석유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사진은 이라크 유정의 불기둥과 미군 병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윌리엄 엥달 지음·서미석 옮김/400쪽·1만8000원·길

9일 그루지야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가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게 시위의 원인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며 세계 각국의 정치와 안보에 개입해 온 미국의 반응은 어떨까. 이 보도는 “미국은 민주주의를 부정한 친미주의자 그루지야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지, 민주주의를 부정했다고 배척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고민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루지야는 세계적 유전지대인 카스피 해의 석유를 서방으로 운송하는 송유관이 지나는 전략요충지다. 미국은 오로지 석유를 얻을 수 있는지, 석유로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지에 따라 움직여 왔다. 그루지야에서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은 권력자를 내치자니 석유가 걱정되는 것이다. 석유 지정학은 오늘날 전방위 지배를 추구하는 미국 전략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30년간 석유 지정학 문제를 연구해 온 저널리스트다. 이 책에선 석유가 나오는 지역과 송유관을 지배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어떤 전략을 보였는지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방대한 문서를 바탕으로 파헤쳤다.

20세기와 21세기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숨은 힘이 석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은 실상 중동에서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베를린-바그다드 노선을 만들려던 독일과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1973년 아랍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일어났다고 알려진 석유파동은 사실은 석유 채굴과 판매에 독점 권리를 행사하는 7대 메이저 석유회사와 영국 미국 고위 관료의 작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유세계의 방어’라고 알려졌던 정책들도 사실 석유 때문이었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기 전 미국 정부의 정책 보고서는 걸프 지역에 미국 병력이 주둔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같은 전략은 오로지 ‘석유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미국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탈레반도 한때 미국의 송유관 사업 파트너였다. 2001년 7월 협상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내자 미국 협상가들은 황금 카펫 위에 앉아 제의를 받아들이거나 융단 폭격에 묻히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9·11테러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융단 폭격을 할 구실을 제공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 정치의 실상,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운 명분의 이면을 설득력 있게 파헤친 수작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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