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 막고 전기 끊어도 취재는 계속돼야 한다

  • 입력 2007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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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정부중앙청사 별관) 2층 로비.

파란색과 보라색의 요가매트가 다시 깔렸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100m짜리 전선을 이용해 외교부 청사 5층에서 로비 바닥까지 전기를 끌어 왔다.

외교부 로비에 ‘바닥 기사송고실’이 다시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다. 2일 밤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청사를 떠난 사이 청와대(홍보수석실)와 국정홍보처, 외교부, 정부청사관리소가 합작해 이곳을 철거한 지 3일 만이다.

이날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바닥 기사송고실’을 국정홍보처가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기존 출입증을 무효화한 것과 관련해 회의를 열고 취재 접근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만큼 합동브리핑센터 입주 등 정부 조치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재확인했다.

○ 로비 ‘바닥’에서의 25일

지난달 12일 정부가 외교부 기존 ‘기사송고실’을 강제 폐쇄할 때만 해도 한 달 가까이 바닥에서 일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깥으로 내몰린 기자들은 하나로 뭉쳤고 정부의 일방적인 기사송고실 및 브리핑룸 통폐합 조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로비 바닥에 임시 기사송고실을 만들었다.

즉석에서 1만 원씩을 모아 등받이 의자 대신 요가 매트리스를 구입했고, 끊긴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전선을 샀다. 없어진 책상 대신 라면박스 등을 이용했다.

한기가 엄습하고 해가 지면 어두운 조명 탓에 눈이 침침해졌다. 취재에 필수적인 전화도 없고, 기사 작성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보관할 공간도 없었지만 정부의 취재통제 조치에 순응할 수 없다는 자발적 의지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 왜 ‘바닥’을 지키나

이유는 한 가지다. 외교부 출입기자로서 취재원과 멀어지는 것은 기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바닥’ 생활을 감내하는 것이다.

한 출입기자는 “기자들이 정부 조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취재 접근권의 문제”라며 “아무리 춥고 배가 고파도 이 자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다른 출입기자는 “현재 외교부는 브리핑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 ‘정보의 빈곤’에 시달리지만 정부가 합동브리핑룸에서 알리고 싶은 내용만 홍보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 “과연 내일이 있을까”

5일 기자들은 5층에 있는 당국자의 방에서 전기를 끌어다 사용했다. 홍보처가 로비에서 기사 송고 작업을 할 수 없도록 2층과 3층에 대한 전기 공급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5층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것은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청와대와 홍보처는 오한을 이기기 위해 구입한 난로와 기사 작성을 위해 보도 자료를 놓아둔 것을 ‘공공의 목적을 벗어난 무단 점유 및 물품 방치’로 매도하고 있다.

6일부터 5층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것마저 차단되면 맨바닥에 노트북을 놓고 기사 송고 작업을 해야 한다. 그나마도 노트북 배터리가 견딜 수 있는 2시간 정도만 가능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바닥 기사송고실을 어렵게 복원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우리에게 과연 내일이 있을까”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온다.

그래도 기자들은 다시 이곳에 모여들 것이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이곳에 있는 한 기자들도 취재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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