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자유 멋 편리함의 극치…나의 애마 스쿠터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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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한 청년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13시간 동안 여객기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자니 허리가 아파 오고 몸은 파김치가 됐다.

영국에 도착할 즈음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귀국길에 유라시아 대륙의 바람과 흙냄새를 맡으며 달렸다.

5개월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그리스,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 20개 국가를 여행하고 지난해 10월에 한국에 도착했다. 임태훈(24) 씨의 동반자는 스쿠터(scooter)였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갈 때도, 해발 4000여 m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어 중국으로 갈 때도 스쿠터는 그의 발이 되어 주었다.》

‘스쿠터’라는 단어에 중국음식점이나 피자집 배달원을 떠올린다면 아직 스쿠터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 어떤 의미에선 자유를 덜 갈망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동변속, 낮고 넓은 발판, 작은 바퀴, 상대적으로 넉넉한 수납공간 등으로 모터사이클(오토바이)과 확연히 구별되는 게 스쿠터다. 시쳇말로 ‘당기면 나가는’ 편리성이 최고의 장점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와 동해로 여행을 떠나고 전국을 일주하고 있다. 10여 년 전 대학생들이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빌렸다면 지금은 스쿠터를 빌린다.

스쿠터는 젊은이의 전유물은 아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익(48) 감독은 스쿠터로 갤러리 투어를 즐기는 ‘실용파 라이더’다.

단거리 이동을 위해 1912년 군용으로 개발된 스쿠터의 2007년 한국판 이야기는 아기자기 하다.


촬영 : 박영대 기자

○ 가고 싶은 곳 맘대로

임 씨는 왜 스쿠터를 골랐을까. 자전거로 영국 일주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좀 더 빠르게 이동하기를 원했다. 속도감을 즐기면서도 여행지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의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승용차나 버스,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점’에서 ‘점’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여러 교통수단의 틈새에 스쿠터가 있었다. 이륜차가 처음인 그에게 수동으로 변속해야 하는 모터사이클은 부담이 있었지만 스쿠터는 그렇지 않았다. 영국보다 등록비가 싼 독일에서 125cc 스쿠터를 사서 등록했다. 그곳에서 보험을 들고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직접 운전하며 갈 수 있다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일반 관광객들은 가기 힘든 한적한 마을을 직접 찾아 다녔다.”

코펠과 침낭, 텐트는 스쿠터 뒤에 싣고, 지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달렸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장소를 만나면 하루나 이틀 더 묵었다가 가는 느긋한 여행이었다. 길을 잃어 숲 속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잔 적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프랑스 노부부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기도 한 여행이었다.

스쿠터로 일주일간 전국 여행을 한 이수진(24) 씨는 “스쿠터는 자유로운 느낌이 강한 교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로든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스쿠터로 전국을 일주할 당시 30여 분 동안 차 한 대 지나지 않은 시골길은 아직도 떠오르는 장면이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전날 아껴두었던 사과를 ‘아삭’ 깨물며 달리던 길이었다. 주변은 온통 산과 들이었고 새벽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도 독차지였다. 세상이 내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최근 스쿠터로 제주도를 여행하는 붐이 일고 있다. 인천이나 목포, 부산까지 스쿠터를 타고 여행을 한 뒤 배에 스쿠터를 싣고 제주도에 가서 다시 스쿠터로 이동하는 여행이다. 제주도 현지에서 스쿠터를 빌려주는 사업자도 있다. 동해바다로 그룹 투어를 떠나는 동호회도 많다.

○ 강북지역은 스쿠터 타기 최적조건

스쿠터를 타면 도심의 교통체증과 상관없이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차장 걱정이 없다. 스쿠터 라이더가 도심에서도 자유를 느끼는 이유다.

이준익(48) 영화감독은 스쿠터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는 라이더다. 촬영이 없는 기간이면 거의 매주 주말 스쿠터를 타고 ‘갤러리 투어’에 나선다.

그는 “1, 2주마다 교체되는 갤러리의 작품들을 보며 눈을 씻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집에서 스쿠터를 타고 출발해 종로구에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훑는다. 주요 코스는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와 토탈미술관, 부암동의 환기미술관과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가회동의 원앤제이(one&j) 갤러리, 소격동의 아라리오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인사동 노암갤러리와 인사아트센터, 목인박물관,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등이다.

이 감독은 “차로 돌아다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죠. 도심에서 주차나 교통체증 걱정 없이 미술품을 볼 수 있는 건 축복”이라고 말했다.

충무로 사무실과 집을 오갈 때도 일주일에 3, 4회는 50cc 혼다 ‘줌머’를 타고 다닌다. 장거리 이동 시에도 스쿠터를 탈 욕심으로 최근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했다. 250cc 혼다 포르자 스쿠터를 타기 위해서다.

그는 “좁은 길과 넓은 길,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곧은길이 함께 있는 강북은 스쿠터를 타는 재미를 느끼기에는 최적”이라고 말했다.

○ 부담 없이 떠나는 길

스쿠터는 1, 2년 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50cc의 작은 스쿠터가 특히 인기였다. 귀엽고 깜찍한 디자인의 스쿠터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250cc 이상의 ‘빅 스쿠터’ 수요가 늘고 있다. 50cc로 시작한 이들이 점차 배기량을 높이는 중이다. 스쿠터 열기가 먼저 번진 일본에서는 빅 스쿠터 열풍이 한창이다.

배기량으로 모터사이클과 스쿠터를 구분하지는 않는다. 가속의 편리함과 수납공간이 많은 장점 등을 살린 500cc 스쿠터도 볼 수 있다. 야마하의 ‘티맥스’는 대표적인 500cc 스쿠터. 모터사이클처럼 급격한 좌우 회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스쿠터 같지 않은 스쿠터다.

스쿠터 라이더들이 제주도나 동해 바다로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경제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50cc 스쿠터의 연비는 L당 40∼50km다.

일반 승용차에 비해 최대 5배 이상의 거리를 더 달리는 셈이다. 125cc와 250cc 스쿠터의 연비는 각각 30km, 23∼24km다.

20개국을 여행한 임태훈 씨는 총 2만 km를 스쿠터로 달렸다. 총 기름값은 120만 원. 국내 휘발유 값으로(1L에 약 1600원) 환산한다면 1만 원어치(6.26L)로 166km를 달렸으며 1L에 약 27km를 달린 셈이다. 식사비 80만 원과 숙박비 60만 원으로 5개월 동안 약 260만 원이 들었다. 6박 7일 동안 전국 여행을 한 이수진 씨는 식비와 민박비, 연료비를 합쳐 17만1000원이 들었다. 이 씨는 “속초를 왕복할 때 일반 승용차라면 기름값이 7만 원가량 들었겠지만 50cc 스쿠터로 여행해 2만 원 안팎이었다”고 말했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내 스쿠터 타고 제주도 가기

▼가을 옷 입은 삼다도 애마 타고 감상할까▼

요즘 대학생들은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를 돌아보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스쿠터를 빌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스쿠터를 가지고 갈 수도 있다.

인천과 전남 목포·완도·고흥(녹동), 부산항에서 스쿠터를 실을 수 있는 제주도행 여객선을 만날 수 있다.

목포항은 수도권에서 출발 시 소요시간과 가격 면에서 최적이다. 목포까지 가면서 즐기는 충청·전라 지역 여행은 덤이다. 충청·전라 지역의 라이더도 목포가 최적의 항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승객 운임은 객실 등급에 따라 2만1800∼8만6350원. 이륜차 운임은 50cc 1만1700원, 90∼125cc 2만3400원 등이다. 제주까지 4시간 30분이 걸린다. 오전과 오후 하루에 2번 출항한다.

짧은 배 여행을 원한다면 완도로 가자. 좋은 여행지는 완도를 즐기는 여행계획도 함께 짜는 게 좋다. 완도행은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 단점이다. 월∼금요일은 하루 2, 3회 출항한다. 승객 운임은 1만9650∼2만5150원. 이륜차는 50cc 1만4570원, 100∼125cc 1만6370원 등이다. 직항선은 배에 따라 2시간 50분과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여러 섬을 경유하면 5시간 이상 걸린다.

녹동(고흥)항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간 지점 항구다. 매일 오전 제주로 출항하는 배가 있다. 전북이나 대구지역에서 접근하기 좋다. 비용 면에선 목포에서 출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소요 시간은 3시간 30분.

부산항에서 제주까지는 10시간 30분이 걸린다. 규모가 다른 배가 이틀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운항한다. 승객 운임은 각각 3만2000∼15만 원과 1만8300∼12만 원. 이륜차 운임은 125cc 2만1000원가량.

인천은 수도권에서 가장 가깝다. 제주까지 13시간 30분이 걸린다. 오후 7시 출발해 다음 날 오전 8시 30분에 도착해 일과를 마치고 출발하기에 좋다. 승객 운임은 5만3500∼19만 원, 이륜차는 125cc 기준으로 3만300원가량.

제주도에서 스쿠터를 빌리는 비용은 50cc가 48시간에 5만∼6만 원대(비수기)다. 성수기에는 8만5000원 가량. 125cc의 대여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다.

제주의 탁 트인 해안도로를 달리면 가슴까지 탁 트이는 듯해 이동하느라 지친 심신이 달래진다. 1112번 지방도의 ‘비자림로’ 등 삼나무가 울창한 길을 달려도 좋다.

<도움말=월간스쿠터앤스타일>

허진석기자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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