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내 아들, 말도 안 듣고 말도 안 하고…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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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들은 입을 꼭 다문 채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이 성장통에서 겪는 감정의 속내를 들으려면 마음을 여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소년들의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무시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춤이든 노래든 열정으로 덤비는 일엔 박수를 쳐 줘야 한다. 사진은 비보이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들은 입을 꼭 다문 채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이 성장통에서 겪는 감정의 속내를 들으려면 마음을 여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소년들의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무시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춤이든 노래든 열정으로 덤비는 일엔 박수를 쳐 줘야 한다. 사진은 비보이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들 심리학/댄 킨들론 외 지음 문용린 옮김/528쪽 1만8000원·아름드리미디어

“날 도와준다고요? 필요 없어요. 난 미치지 않았다고요. 문제가 있는 건 부모님이에요.”

35년간 청소년들을 상담해 온 아동심리학자와 심리상담사인 두 저자의 상담실에 온 ‘소년’들이 내뱉은 첫 마디는 대부분 이랬다.

소년들은 온몸으로 ‘접근 금지 표시’를 하며 저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의 짧은 대답은 “난 괜찮아요”였다. 그들의 몸은 잔뜩 경직된 상태였고 완고한 표정으로 감정을 토로하지 않았다.

미국 얘기지만 한국도 다르지 않다. 성인이 된 옛 ‘소년’들이 회상하는 학창시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들’들은 고통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분노, 폭력, 침묵으로 나타날 뿐이다.

“아들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말을 하지 않고 적대감만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좋은 아빠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반항에 당황한 부모들이 저자들에게 물어 왔다. 이 책은 그 답이다. 성공하는 아들로 키우기 위한 교육 방법이 담겨 있진 않다. 그 대신 아들들의 성장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찬찬히 반추해 볼 시간을 준다.

상담의 베테랑답게 실제 상담한 소년들의 사례를 풍부하게 담았다. 상담 결과를 과장하지 않고 소년들이 내면을 드러내는 과정을 담담히, 그러나 철두철미하게 분석했다.

아들들이 입을 꼭 다문 채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저자들은 거칠고 공격적으로 보이는 소년일수록 슬픔과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자신의 속내를 침묵으로 방패막이하면서 더욱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들의 정서적 고립은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문화와 고정관념 탓이다. 우리네 아들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예민하고 풍부한 감성을 억누르도록 교육받는다. 강하고 냉정하고 거칠고 과묵하고 참고 극복하는 남성상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내면이 황폐화된다. 그런데도 교사와 부모는 ‘당연히 미래에 성공할 예비 후보자’로 아들들을 대한다.

결국 소년들은 민감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서툴러지고 마음속에서 들끓는 복잡한 감정 때문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폭력과 살인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감정 표현이 서툰 두 남자에게 눈을 돌린다. 아버지와 아들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가로놓인 두꺼운 정서적 장벽을 느낀다. 상담실에 찾아온 아버지들은 “아버지가 내게 해줬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애정을 아들에게 쏟아 붓는다”고 말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는 나를 조금도 이해 못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갓난아기 때부터 아버지가 아들을 돌볼 것을 조언한다. 아들의 삶에서 아버지를 애정 어린 첫 존재로 깨닫게 해주라는 것. 일상적이고 평범한 활동을 같이해 둘만이 공유하는 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소년들의 속내를 듣기 위해 짧게는 50분에서 길게는 몇 주 몇 달을 기다린다. 그렇게 참고 기다린 뒤에 대화의 봇물이 터지면 소년들은 침묵과 분노 뒤에 감춰뒀던 슬픔과 당혹감을 드러낸다. 또 저자들은 소년들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어휘를 발달시키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감정을 인지해 감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그런 감정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분명히 깨닫도록 학습시킨다는 것이다. ‘사내자식이 울긴 왜 울어’ 하는 식으로 억제당한 감정표현이 쏟아져 나올 때 대화가 시작된다는 게 책 내내 거듭되는 저자들의 호소다.

윤똑똑이(혼자 잘나고 영악한 체하는 사람)를 낳는 교육 비법류의 책이 난무하는 요즘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원제 ‘Raising Cain’(1999, 2000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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