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염천에 왜 걷느냐고? 길 나서야 나를 만나지”

  • 입력 2007년 8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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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탁발순례 3년6개월 2만5천리… 도법스님 끝나지 않는 길

입속에서 밥알 하나가 튀었다. 기자를 응시하며 자분자분 말을 잇던 스님의 시선이 슬쩍 식탁 위에 떨어진 밥알을 쫓다 제자리를 찾는다. 정면을 보면서 스님의 오른손은 정확히 밥알을 집어내 입에 넣었다. 숙달된 솜씨다. 시선과 입과 손가락, 따로 논다. 산채비빔밥을 먹고 난, 고추장으로 범벅이 된 대접에 물을 부어 휘휘 젓더니 스님은 맛있게 물을 들이켰다.

생명평화탁발순례에 나선 도법(59) 스님을 만난 것은 16일 강원 태백에서였다. 지난달 29일 평창을 끝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또다시 멀고 먼 여정에 돌입한 것이다. 2004년 3월 1일 실상사 주지 자리를 내려놓고 지리산 노고단에서 탁발순례를 시작했으니 벌써 3년 반이다. 그동안의 순례길이 2만5000리, 1만 km. 이제 강원 일부와 서울 경기 지역만 남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

스님은 떠날 때 그랬다. “나는 늘 갈 수 없는 곳만을 그리워하며 걸어왔습니다. 평생을 잡을 수 없는 것들만을 잡으려고 손 내밀며 살아왔습니다. 갈 수 없는 바다, 갈 수 없는 산과 사막, 갈 수 없는 하늘과 별들…. 나를 살아 숨쉬게 하는 공기, 나를 먹이고, 발 딛고 살아가게 하는 땅을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잡히지 않는 바람, 뜬구름 같은 것들만을 그리워하느라 인생을 탕진했습니다.”

스님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 행위인 걸음걸이를 통해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사람과 흙과 돌과 땀으로 채워 넣었다.

“걷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생명 평화를 완성하기 위한 행위지요. 걷는 것은 곧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면의 소리에 충실한 삶을 살고 그 결과 내 삶에 생명과 평화를 흘러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걷기가 사유의 수단이라면 그 종착지는 어디인가. 왜 30도가 넘는 땡볕 속에서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하는가.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알고, 더 편리해지고 풍요로운데 세상을 들여다보면 삶에 늘 쫓기고 갈등과 대립은 더 첨예해지고, 황폐해집니다. 더 인간다워지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싶은데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것이 질문의 출발입니다.”

거기까지는 알겠다. 그러나 순례를 통해 몇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세상에 평화와 생명이 충만해질까. 스님의 목소리는 작지만 분명하다. “세상은 그물과 그물코처럼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나와 너, 개인과 전체,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가 분리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평화가 내 삶이 되면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가 변하면 개인의 변화를 이끌게 됩니다. 개개인의 주체적 각성이 필요한 것이지요.”

스님의 얘기를 정리해 보면 핵심은 ‘자리이타(自利利他)’다. 나를 비우고 낮춤으로써 나를 살리고 양육하는 너, 즉 타인과 자연에 감사하는 것이다.

“나는 거지입니다. 내 생명을 낳고 길러준 것은 ‘너’라는 존재입니다. 너를 귀하고 존귀하게 여기니 내가 존중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이 악하겠습니까.”

하지만 개인적인 결단은 힘들다. 우리는 이미 소유의 노예다. 가지지 않으면 불안하다. 쉽게 자본과 소유의 메커니즘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세상은 그를 ‘낙오자’로 덧칠한다. 대중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봅시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다 생각하면 그대로 살면 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과의 대면이 필요하지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스스로 삶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면 그것이 생명 평화의 삶입니다. 다만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얻는 쾌락과 삶의 만족은 다르지요.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섰다. 날씨가 푹푹 찐다. “스님, 더운데 힘들지 않으세요.” 정수리를 푸욱 찌르는 답이 돌아왔다. “기자 하기는 쉬운가요?”

태백=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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