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식어버린 꿈, 뜨거워진 삶…‘달의 바다’

  • 입력 2007년 8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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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정한아 지음/184쪽·8500원·문학동네

“꿈꿔 왔던 것에 가까이 가 본 적 있어요?”

물론 우리는 안다. 태양은 멀리 있을 때처럼 빛나지 않는다는 걸. 가슴의 뜀박질은 잦아든다는 걸.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달의 바다’는 쓸쓸한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은미는 ‘소리 없이 가장 빠르게 죽는 방법’ 목록을 만들고 있다. 언론사 입사시험에 또 떨어지고 난 뒤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원형탈모증마저 생겼다. 할아버지는 “내일부터 가게(이대갈비)에 나와서 일 배워라”라고 딱 잘라 말하고, 그나마 위로가 돼 줬던 남자 친구 민이는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신세 한탄 들어 줄 틈이 없다.

이 이야기는 꿈꿔 왔던 것에 가까이 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은미는 꿈꾸던 기자가 아니라 갈비집 후계자로 사는 게 현실적인 것 같고, 드디어 성전환수술비를 마련했는데도 민이는 ‘넌 너무 건장한 남자’라는 구박만 받는다. 두 사람은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됐다는 은미 고모를 찾아 나선다.

두 사람과 달리 고모는 꿈을 이룬 것 같았다. 은미 이야기와 번갈아 나오는 고모의 편지를 보면 그렇다. 아들까지 떼놓고 15년 전 미국으로 간 고모는 다른 식구들 몰래 할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 고모의 편지에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훈련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 소설은 꿈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동화 같은 휴먼 스토리가 아니다. 꿈꿔 왔던 것에 도달하지 못했을 많은 사람에게, ‘그런 뒤에도 삶은 어떻게 지속되는가’의 의문에 답하는 이야기다. 젊은 작가 정한아(25·사진) 씨는 이 연민 어린,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주제를 청승맞지 않게, 상큼하면서도 꽤 무게감 있게 풀어간다.

주소 적힌 편지 하나 달랑 들고 떠난 은미와 민이는 우여곡절 끝에 고모를 만났다. 고모가 둘을 관제센터로, 우주선 체험실로 안내했다. 그렇지만 고모는 우주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 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게 없어.”

고모의 비밀에 상심했던 은미는 ‘꿈꿔 왔던 것에 닿지 못해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주복을 입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고모처럼. 고모는 그럼에도 그 삶을 긍정하고 살아가기로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많은 사람이 서 있는 자리는, 아마도 고모의 자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삶이 꿈보다 길고, 때로 꿈보다 강하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그 순간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고모는 은미에게, 독자들에게 일러 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인생은 모두 한 권의 소설이 될 수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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