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가 음악강국인 이유는?

  • 입력 2007년 4월 23일 17시 39분


코멘트
'세상에서 가장 긴 바(Bar)'. 카리브해의 파도가 쉴새 없이 철썩이는 쿠바 아바나 항구의 말레콘 방파제를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해질녘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방파제 위에는 연인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대화를 나눈다. 방파제를 넘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에는 어디선가 노천 카페에서 연주하는 타악기의 리듬과 기타의 선율이 실려온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말레콘 방파제를 넘어오던 파도처럼, 쿠바 음악은 월드뮤직계를 주기적으로 강타해왔다. 19세기 말부터 쿠바에서 생겨난 아바네라, 맘보, 룸바, 차차차, 아프로-쿠반 재즈, 살사까지. 그 중 가장 최근 것은 1990년대 후반 전세계적으로 600만 장 이상의 음반판매를 기록했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열풍이었다.

○ 쿠바가 음악강국인 이유

"쿠바인들의 핏 속엔 음악이 흐르고 있어요. 쿠바인들은 자신의 전통음악 뿐 아니라 세계 의 음악을 받아들여 최고의 음악을 창조하지요." (훌리오 노로냐·그룹 '로스 반 반'의 멤버)

쿠바라는 명칭은 원주민 언어로 '중간지대'를 의미하는 '쿠바나칸'(Cubanacan)에서 유래했다.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남미로 가는 중간 기착지이자 풍부한 문물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들었다. 쿠바는 사탕수수 농장에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리듬과 스페인의 선율이 만나 독특한 음악적 퓨전을 일궈 왔다.

쿠바에선 현재 '송(son)' 음악이 최고의 인기다. 1900년대 무렵 동부 오리엔테 지역에서 발생한 '송'은 살사의 모태가 된 음악이다. 송음악의 다양한 퓨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기 위해 아바나의 명문클럽인 '카사 데 라 무지카'(음악의 집)를 찾았다.

이날 밤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보컬이 등장하는 '밤 볼레오'. 아프리카 리듬에 색소폰, 트럼펫, 신디사이저까지 섞은 이 그룹은 현대적인 사운드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룹이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격렬한 살사 댄스의 춤판으로 변신했다. 최신 그룹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은 머리가 희끗한 쿠바의 노인부터 젊은 흑인 여성까지 다양했다. 모든 세대와 인종이 함께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드 아바나 시내의 골목 곳곳에서도 카페나 바에서 수준급 밴드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봉고(크기가 다른 두 개의 작은 손북)와 마라카스(야자나무 열매의 속을 씨만 남기고 파내 만든 악기), 구이로(빨래판처럼 홈이 파인 호리병박 모양의 악기) 등 아프리카 리듬악기와 트레스(겹줄로 된 6현 기타), 색소폰, 바이올린, 플루트 등 악기구성도 다양하다. 열대과즙처럼 쏟아져 나오는 흥겨운 댄스리듬에 흑인 여성이 길을 멈추고 한바탕 춤을 추자 큰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전통음악의 세계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전통음악의 세계적인 성공'이란 사실이다. 이 음반은 1959년 쿠바 혁명 이전의 전통음악만 담겨 있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부에나…'의 음악만이 쿠바 음악의 전부인 줄 아는 시각에 불쾌감을 금치 못한다. 비유하자면 이는, 마치 50~60년대 트로트 음악만이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인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쿠바에는 그래미 상을 받기도 한 40년 전통의 '로스 반 반'(Los Van Van), 추초 발데스와 아라케레, 차랑가 아바네라, 아달베르토 이수 송, 밤 볼레오 등과 같은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많지만 미국내 음반 유통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프로모션이 힘들다.

하지만 경제봉쇄가 미국이 양산해 내는 팝 음악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쿠바가 세기말 이후 전 세계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로 떠오른 라틴 음악의 종주국이 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상업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쿠바의 음악인들은 실력만 갖추면 장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영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레소(Progresso)의 녹음현장을 찾았을 때 56세의 PD 기예르모 빌라르씨가 60대 가수 아달베르토를 초청해 '2000년대의 젊음'에 대해 논하는 것이 무척 인상깊었다.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의 아버지 데보 발데스는 94살의 나이에도 2년 후의 스케줄까지 꽉 차있다고 한다.

빌라르 씨는 "변함없이 똑같은 음악을 하는 것은 쿠바음악이 아니다"며 "쿠바에서는 음반회사가 결정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실험하고 퓨전해내는 음악이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아바나=전승훈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