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는 책의향기]풀꽃들이 왜 이른 봄에 필까?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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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용택 시인

To: 고3이 된 딸 민해에게

작년에 나는 국립수목원 연구관인 이유미 선생님에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단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산속이었는데 그 산속에 있는 수많은 나무와 풀들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감동, 경탄, 탄복을 금치 못했단다. 나무들이 사는 일도 사람 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복잡했단다. 밤송이가 왜 가시로 둘러싸여 있는지, 도토리가 왜 두꺼운 껍데기로 싸여 있는지, 민들레며 질경이며 수많은 씨앗들이 왜 그렇게 생겨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이유미 선생님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너와 오빠 중 한 사람은 식물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에 이 선생님과 너희들의 진학 문제를 상의한 적도 있단다.

나도 풀과 나무와 물고기에 대한 것들을 남 못지않게 알고는 있지만 상당히 무책임한 이야기들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유미 선생님의 책들을 사 모았단다. 우리의 산야에 피고 지는 수많은 꽃 이야기를 쓴 ‘한국의 야생화’(다른세상), 우리가 날마다 보면서도 그 이름을 모르는 정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가지’(현암사) 등 우리의 산야를 뒤덮고 있는 나무와 풀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새롭게 일깨우는 책들이다.

그리고 봄이 오는 요즘 나는 선생님의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지오북)를 읽고 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속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눈이 시린 나무와 풀들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기록되어 있다. 꽃 이야기, 나무 이야기도 마음에 가득 묻어나지만 나는 선생님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더 좋아한다. 무구한 자연이 가르쳐 준 마음이니 오죽하겠니.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구나. ‘동물보다 한 수 위인 풀과 나무에게 배우는 오래된 삶의 법칙.’ 그래 그렇고 말고. 꽃이, 나무가, 숲이, 강과 하늘이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들 그 속에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니?

민해야, 나는 키가 큰 나무들의 꽃도 좋지만, 땅에 바짝 붙어 겨울을 지내다가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풀꽃들을 좋아한단다. 복수초, 깽깽이풀, 노루귀, 홀아비바람꽃, 변산바람꽃, 광대살이, 냉이, 꽃다지. 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이 풀꽃들은 대개 옛날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도 했단다. 이 작은 풀꽃들이 왜 이른 봄에 피는지 아니? 이 작은 풀꽃들은 다른 키 큰 나무들이 잎이 피기 전에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진짜 그렇겠지?

‘그러고 보니 봄꽃들의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면 더욱 어렵고,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하면 성공이 더욱 가깝다고 하죠.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와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봄에 피는 작은 풀꽃들을 보고 이유미 선생님이 쓴 글이다.

민해야, 공부하다 지치면 문득 고개를 들어 봄이 오는 산을 바라보거나 땅 가까이 눈을 주어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작은 풀꽃이라도 찾아보렴, 새로운 힘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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