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유강희, “외가집”

  • 입력 2007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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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새끼를 낳았다. 찬물 한 그릇 떠서

누렁콩도 소복이 담아 외양간 앞에 놓았

다. 이틀밖에 안 된 송아지가 머리로 툭툭

차면서 퉁퉁 불은 젖을 빨아먹는다. 눈이

선한 어미는 마른 지푸라기를 소리 없이

새김질하며 이따금 꼬리를 흔들어 쇠파리

를 쫓는다. 오래 된 낡은 대문에는 한지를

잘라 끼운 쌍줄을 쳤다. 지나가던 이웃 사

람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복만이 있

는가, 큰 소리로 삼춘 이름만 부르곤 한

다. 거기에는 한쪽 다리를 끌고 일흔이 넘

은 외할머니가 산다.

- 시집 ‘불태운 시집’(문학동네) 중에서》

소가 음식이 아니라 가족인 곳이 아직도 있긴 있을라. 늙은 농부와 함께 무거운 쟁기를 끌고 사래 긴 밭 갈고 돌아오면, 그의 아내가 뜨거운 쇠죽 쑤어 주고 등도 긁어 주는 그런 오지 마을이 있긴 있을라.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새끼 낳으면 금줄을 쳐 주기도 했었지. 나를 위해 너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나와 우리를 금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나 이제 도시의 대형 할인마트에 가면 딸랑거리는 목방울 소리도, 새김질 소리도 없이 부위별로 깔끔히 손질된 소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인간을 위해 삼십 년 수명을 반납하고, 두세 살 만에 덩치 큰 비육우가 되어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선홍빛 꽃등심이 눈부시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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