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엔 ‘참을 수 있는 가벼움’이 있다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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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소설 ‘日流’ 왜?

《요즘 출판가의 ‘일류(日流)’는 그냥 흐르는 물이 아니라 홍수 수준이다. 지난 한 주 일본소설 신간만 10여 권이 쏟아졌다.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일본 문학 작품(509종·153만 부)이 줄곧 번역문학 출간·발행 종수 1위를 차지했던 미국 문학을 눌렀다는 소식도 나왔다. 인기 있는 일본소설은 대부분 대중소설이다. 그렇지만 서양의 블록버스터 대중소설이나 꽃띠문학(치크리트·chick-lit·2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 소설)과는 구별된다. 역사적으로는 일본과 불화 관계에 있었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게 잘 팔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장르의 작가군이 한국에선 공백 상태인 것도 일본소설의 이점이다. 이런 요인 덕분에 단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팬층을 거느린 작가가 많이 생겨났다. 일본소설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한 사람만 떠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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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의 에쿠니 가오리에 이어 스타로 뜬 소설가는 오쿠다 히데오. 2005년 1월에 나온 ‘공중그네’가 3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일류’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나온 ‘남쪽으로 튀어!’(전 2권)가 첫 권만 10만 부 팔리는 등 최근 2년 새 소개된 작가 중 가장 인기가 있다.

‘공중그네’는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많은 나오키상 작가 중 이 작가의 두드러진 힘은 독자층을 넓힌 데 있다. ‘일본소설은 20대에서 30대 초반 여성이 타깃’이라는 공식을 깨고 10∼30대 후반 독자를 모았다. 특히 남성 독자에게 어필한 게 결정적인 흥행코드였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 대형 서점의 분석 결과 ‘남쪽으로 튀어!’의 독자 중 반 이상이 남성”일 정도다. 출판평론가 이권우 씨는 오쿠다의 작품에 대해 “가볍고 날렵하면서도 진중한 주제 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작품, 역사와 사회 문제에 바짝 달라붙어 샅바 싸움을 벌이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지금껏 익숙하던 ‘쿨한 일본소설’이 아니라 ‘쿨하되 주제는 묵직한’ 게 남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대형 작가는 아니지만 마니아층이 두꺼운 ‘폐인 작가군’도 형성됐다. 미야베 미유키, 이사카 고타로 등은 작품마다 판매부수가 1만∼2만 부로 많지는 않으나 열혈 독자를 이끄는 작가들이다. 오쿠다도 그렇지만 이들도 여성적인 감수성에 호소해 온 그간의 일본소설과 달리, 문체는 날렵하되 문제의식은 무게감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모방범’ ‘스텝 파더 스텝’이 소개된 미야베는 일본에선 ‘여왕’으로 불리는 추리소설 작가. 킬링 타임용 성격이 강한 서양 추리소설만 보다가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이 스며 있고 묘사력도 뛰어난 미야베 스타일을 접하니 새롭게 느껴진다는 게 독자들의 평이다.

이사카는 ‘사신 치바’ 등 7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일본에서 평론가와 편집자들이 좋아하는 소설가로 잘 알려졌으며 국내에서도 마니아 작가로 꼽힌다. ‘간단하지 않은’ 주제의식이 특징이고, 재기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등 다섯 권의 소설이 쏟아진 온다 리쿠도 지지를 얻어 가고 있다.

이 같은 소설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만큼 국내 작가군도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현재 국내 대중소설로는 수준이 높아진 독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게 출판계의 인식이다. 오에 겐자부로를 꿈꾸는 작가뿐 아니라 아사다 지로를 닮고 싶어 하는 작가도 함께 발굴해야 하며, 눈 밝은 독자를 만족시킬 만한 ‘라이트 노블’ 작가가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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