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11>남자는 다 그래!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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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결코 철들지 않는다. 절대 어른이 안 된다. 기회만 있으면 놀려고 한다. 사랑도, 명예도, 전쟁도 다 놀이다. 탈세도 일종의 경찰 놀이다. 남자들은 수집광이다. 어릴 적 딱지나 구슬을 모았듯 이제는 자동차를 수집하고, 집을 수집하고, 여자친구와 휴대전화를 수집한다. 남자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 한다. 축구를, 섹스를, TV를 즐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뜻대로 안 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남자들은 의기소침해지고 자기 연민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본문 중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연세가 지긋한 여성분들에게서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남자는 모두 똑같다.” 이 단순하면서도 부정적인 뉘앙스의 남성 평가에는 그녀들이 지난 세월 수많은 남성들과 부딪치고 고생하며 체득한 경험이 녹아 있어 함부로 부정할 수가 없다.

유럽 남자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독일 문화비평가 에릭 헤그만도 같은 주장을 한다. 책 제목부터 ‘남자는 다 그래’이다. 그는 남자들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자상한 사람이든 마초든 다 똑같다고 한다. 하나같이 철이 없으며 3분에 한 번꼴로 섹스를 생각하고, 좋은 차에 자존심을 걸며, 의무와 구속을 싫어하고, 무리를 짓기 좋아하고, 엄살이 심하다는 것이다.

모든 남자가 왜 똑같다는 걸까. 그것은 남자들의 원초적인 욕망과 본성이 동일한 데다 성 정체성과 역할을 사회적으로 훈련받아 행동양식도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남성성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저자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남자의 실상을 까발리는 방식을 취한다. 각 장은 한 편의 시트콤처럼 구성돼 매우 코믹하고 재미있다. 자기 경험과 연결하며 맞장구를 칠 만한 대목도 자주 나온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해서 점잖은 사람이 읽기에 불편한 감도 없지 않다. 저자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독자에 따라서는 불편함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 남성은 남성을 관찰하기에 좋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남성이면서 남성의 파트너이고, 여성의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한번쯤 남성의 실체에 대해 아무런 수식과 포장 없이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엄숙함은 잠깐 접고, 술 취해 난장판을 벌이고 아이들 장난감으로 놀며 비뇨기과 의사 앞에 성기를 드러낸, 있는 그대로의 남자를 구경하면 된다. 약간의 불편함과 재미를 함께 즐기면서 남성의 원초적인 본성이 무엇인지, 그것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여성 독자들이 남자를 알고 대처하는 데 이 책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남성이 구조적으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보듬어야 하고, 무엇을 치유해야 할지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한 가지 있다. 그저 남자들의 생활을 시시콜콜 드러낸 이야기가 어떻게 코미디처럼 우스꽝스러워졌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가 글을 재미있게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남성적이라 믿고 추구하는 것들 중 상당수가 실상은 욕망을 세련되게 포장한 것이며, 그것이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낡고 어색하며 어이없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김병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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