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 책의 미래는 과연…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 입력 2006년 10월 8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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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작은 출판사도 '빅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Vs. "인터넷 검색 엔진의 정보 무상 공개는 작은 출판사를 도태시킬 것이다."

책의 미래를 볼 때 인터넷은 약속의 땅일까 아니면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일까. 8일 폐막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어느 때보다 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졌다. 책이 더 이상 '종이책'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 디지털의 도전과 응전

올해 전시 품목만 보아도 책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전체 품목 중 '종이책'은 절반에 못 미치는 43%였다. 나머지는 e북과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오디오북 등 디지털 품목과 도서 관련 주변 제품들이다.

매일 열린 포럼과 세미나에서 두드러진 주제도 '책의 디지털화(化)'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다. 인쇄매체 종사자들은 구글 등 인터넷 검색 엔진의 위협을 우려하는 반면, 구글이나 아마존 등은 검색 엔진이 책이 독자와 만나는 평등한 기회의 공간임을 강조했다.

국제출판협회(IPA)와 세계신문협회(WAN) 공동 주최로 6일 열린 세미나 '인쇄매체와 검색엔진'에서 개빈 오라일리 WAN 회장은 "검색 엔진은 더 이상 정보의 고속 유통 채널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지적 창작물로 수익을 내는 매체이자 디지털 도서관"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규모 인쇄 매체들은 검색 엔진의 접근을 아예 막거나 콘텐츠를 무상으로 모두 가져가게 하는 선택 밖에 없어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나 마리아 카바네야스 IPA 회장은 검색 엔진이 주도하는 정보 무상공개(Open Access)의 극단적 흐름을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라고 비난했다.

이날 IPA와 WAN은 인터넷 콘텐츠의 저작권 관련 정보와 무상공개 허용 범위를 검색 엔진이 자동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통신 규약인 'ACAP(Automated Content Access Protocol)'의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WAN과 IPA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11월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오라일리 회장은 "ACAP는 책 한 페이지, 기사 한 건에 대해서도 저작권과 공개 허용 관련 정보를 검색 엔진이 자동으로 읽도록 해 결과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하고 수준 높은 정보를 인터넷에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구글의 대안으로 저작권을 보호하는 책전용 포털 '북뱅크'의 출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책의 디지털화가 작가 출판인 독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영국의 출판 에이전트 데이비드 고드윈은 "휴대용 전자도서 단말기가 보편화되면 e북이 먼저 독자에게 판매되고 성공이 확인된 e북을 '종이책'으로 만드는 작업이 뒤이어 이뤄지는 형태로 유통 경로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 영국 지사의 매니저 케스 닐슨도 작은 출판사의 책들이 아마존을 통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를 설명하며 "정보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접근성을 인터넷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화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은 도서전 운영 방식에도 반영됐다. 올해 처음으로 작가 기자 판타지팬 등 10명이 매일 개인적 체험기를 올리는 도서전 블로그가 운영됐다. 도서전 포드캐스팅(Podcasting·오디오, 비디오 프로그램을 MP3파일 형태로 인터넷에 제공하는 것)도 올해 처음 시작됐다.

● 아시아 시장의 부상

올해 도서전 참가국은 지난해에 비해 12개국이 늘어난 113개국이었으며 모두 38만2400여권이 전시됐다. 그러나 두드러지는 '빅 타이틀'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였다. 도서전을 찾은 유명 작가들도 독일의 귄터 그라스,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스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들과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 등 원로들이 많았다.

출판사 노블마인 채영희 대표는 "인터넷의 영향 때문인지 예년에 가장 붐비던 영미관도 한산할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아시아 시장이 급부상했다. 중국 참가자는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나 주빈국인 인도보다 더 눈에 띌 정도였다. 태국이나 대만 참가자도 40%, 일본 참가자도 20% 증가했다. 지난해 주빈국이었던 한국의 경우, 소설가 김영하 씨의 해외수출이 두드러졌다. 그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독일어판이 4일 이곳에서 선보였고, '검은 꽃' '빛의 제국'의 유럽 판권이 판매돼 내년 10개국에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8개 만화 관련 업체가 공동으로 차린 별도의 한국 만화 부스는 샘플 북만 하루에 1500여권이 나갈 정도로 북적였다. 만화 출판사인 학산문화사 국제부 조우리 씨는 "3일간 25개 해외 업체의 바이어들과 미팅했다"면서 "2003년에 프랑스에 수출된 만화 '천추'가 2만부 가까이 팔린 여파로 프랑스 바이어들의 문의가 특히 많았다"고 전했다.

프랑크푸르트=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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