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美연쇄살인범에 365년刑

  • 입력 2006년 6월 12일 03시 02분


코멘트
“빨리 집에 가자. ‘샘의 아들(Son of Sam)’이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해.”

“그래. 어? 누구세요?”

1977년 7월 어느 날 저녁 미국 뉴욕 브루클린.

차 안에서 한 쌍의 연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한 사나이가 조수석 창문 쪽에서 총을 쏘았다. 여자는 즉사했고, 남자는 얼굴에 총탄을 맞았다. 그는 의식이 흐려져 가는 순간 총을 쏜 사나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웃고 있었다. 바로 ‘샘의 아들’이었다.

뉴욕은 공포에 떨었다. 저녁만 되면 주민들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외출을 삼갔다. 연쇄살인범 ‘샘의 아들’ 때문이었다.

1976년 여름 이후 1년간 그는 6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주로 한밤중 차 안에 있는 연인들을 노렸다. 살인무기는 44구경 권총. 사람들은 그를 ‘44구경 살인자’라고도 불렀다.

언론매체에는 연일 그의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경찰과 언론에 자신의 살인행각을 자랑하는 편지를 보냈다. ‘샘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였다.

브루클린 살인 현장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경찰은 1977년 8월 마침내 ‘샘의 아들’을 체포했다.

그는 데이비드 버코위츠라는 24세의 우체국 직원이었다.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 그는 웃으며 말했다. “뭐 하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그는 전형적인 사회 부적응자였다. 겉으로는 유순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분노를 키우고 있었다. 친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그는 외톨이였다.

‘샘’은 옆집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는 샘이 키우는 개가 매일 짖어대며 자신에게 살인할 것을 명령한다는 둥 횡설수설했다. 정신이상으로 꾸며 재판을 피해 가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1978년 6월 12일 뉴욕 법원은 그에게 365년형을 선고했다. 뉴욕 주에는 사형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 아티카 형무소에 갇혀 있으며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체포된 이듬해 미연방수사국(FBI)의 저명한 범죄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는 그를 면담했다. 버코위츠는 “사회의 관심과 집착이 살인에 대한 환상을 부채질했다”고 실토했다.

“사람들이 나를 ‘스타’로 취급했어요. 사회가 온통 연쇄살인범에 매혹된 것 같았죠. 나는 ‘샘의 아들’이라는 로고까지 만들 생각이었어요.”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