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욕망의 전차, 파국 향해…‘원더풀 아메리카’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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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호황, 그리고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1920년대는 아직 제 갈길을 찾지 못한 ‘젊은 제국’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새로운 도덕률로 무장한 젊은 여성들은 마침내 집 밖으로 뛰쳐나와 에너지와 감정을 솔직하게 발산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27년 애틀랜틱시티 미인대회. 사진 제공 앨피
전쟁과 호황, 그리고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1920년대는 아직 제 갈길을 찾지 못한 ‘젊은 제국’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새로운 도덕률로 무장한 젊은 여성들은 마침내 집 밖으로 뛰쳐나와 에너지와 감정을 솔직하게 발산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27년 애틀랜틱시티 미인대회. 사진 제공 앨피
◇원더풀 아메리카/프레드릭 알렌 지음·박진빈 옮김/472쪽·1만9800원·앨피

마침내 미국의 여성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여성들은 서서히 일상에서 해방되었다. 미혼 여성은 가게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이유를 더 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독신의 딸들은 가정을 떠나 자신들의 거처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여성들에겐 더 태워야 할 에너지와 감정이 남아 있었다.

자유분방한 아가씨들은 언제부터인가 섹스에 대해 ‘과학이 가르쳐준’ 새롭고도 불온한 이야기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리비도’에 복종하라! 프로이트의 복음이었다.

아마도 이 시기를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한다면 그것은 허리까지 들춰지는 치마를 입고 담배를 입에 문 채 춤을 추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 아닐까?

여성들의 스커트는 눈에 띄게 짧아졌고 정강이뼈와 무릎을 노출시켰다. ‘음험한 포도주’의 유혹과도 같은 루주에 도취했다. 힐난하는 기성세대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신들은 우리가 물려받기도 전에 이 세계를 망가뜨렸어!”

1920년대의 미국은 역사상 아주 특별한 시대였다.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인 저자는 그 1920년대의 들뜸과 낭만, 혼돈과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1931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고전’의 반열에 올랐던 이 책은 원제(Only Yesterday)가 말해주듯 ‘사건 직후’에 씌어졌다.

적색공포, 스캔들에 대한 열광, 도덕과 매너의 혁명, 부자의 꿈, 지식인의 반란, 주식시장 대붕괴…. 그 숨 가쁜 순간들은 21세기 미국을 그대로 복제해내며 생생한 현재성으로 다가온다.

“이 시대의 미국은 마치 카드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도박판에서 패를 고르는 젊은 도박사와 같았다. 도박사는 자기 손에 어떤 패가 주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1918년 11월 11일. 대독일 전쟁의 휴전협정이 조인되었을 때 미국은 무엇보다 전쟁을 잊고 싶어 했다. 윌슨 대통령의 ‘인류에 대한 미국의 의무’에 염증을 냈다. 은혜로운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패배는 이미 자명해 보였다.

당시에는 ‘금주(禁酒)가 유행이었다?’(타임) 그리고 사람들은 볼셰비키 군대의 발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적색공포’는 1920년대 미국의 보수화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삽화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론 정치에 대한 환멸은 새로운 자유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헛된 인생’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배워 가기 시작했고 새로운 장난감과 유행, 스캔들에 몰두했다.

1923년 8월 2일. 포커에 빠져 백악관 도자기까지 내기에 걸었던 ‘모호하고 몽롱했던’ 하딩 대통령이 급사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은 최고의 호황기에 접어든다. 주가는 고원(高原)의 그래프를 그려나갔다. 사람들은 무지개의 끝자락에는 달러가 가득 담긴 항아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1920년대는 정말 호황이었을까?

당시를 살았던 절대 다수의 미국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노동자의 구매력은 떨어지고 있었고 산업투자는 크게 위축되었다. ‘쿨리지 호황’의 실체는 신용구매와 은행 대출이었다. 거품이었다.

그리고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주가는 나뒹굴어진다.

사람들이 쿨리지-후버 번영시대의 붕괴를 어쩔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삼키기에는 너무 쓴 약이었다.’(뉴욕타임스)

저자는 책을 끝맺으면서 이렇게 적는다. “아마도 먼 안개는 1920년대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매혹적이고 광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며 미소 지을 것이다….”

그의 예언은 가히 틀리지 않았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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