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다른점

입력 2006-02-09 03:03수정 2009-09-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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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약칭 재인식)에 실린 논문들은 ‘탈(脫)민중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은 실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을 공통의 기조로 내세운다. 1979년부터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약칭 해전사)의 역사해석이 민족·민중주의적 관점의 지향성이 뚜렷한 반면 ‘재인식’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해전사’와 ‘재인식’이 대비되는 주요 주제는 농지개혁, 분단과 6·25전쟁의 원인, 이승만 정권 평가 등이다. ‘해전사’가 한국사의 질곡으로 지적해 온 대상들에 대해 ‘재인식’은 오히려 근대화를 이루게 한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까닭에 ‘해전사’와 ‘재인식’은 상호 보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때 제대로 된 독법(讀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일과 일제 잔재 청산=‘해전사’는 친일 군상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일제 잔재의 미청산을 역사 왜곡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목했었다. 반면 ‘재인식’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상이 친일-반일의 도식적인 구도로 쉽게 이분화되지 않을 만큼 복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한 예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한글운동에 대한 평가다. 이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의 최후의 보루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지만 ‘재인식’에서 이혜령(국문학) 성균관대 강사는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는 철자법 개정, 교과서 개정 등 조선어문 통일을 조선총독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도입했을 뿐 일제 잔재를 남겨 놓았지만 북한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이 철저히 이뤄졌다는 진보학계의 시각에 대해 ‘재인식’에서 기무라 하쓰히코(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는 “농업 부문의 생산책임제 강제수매제 등 일제가 구축한 전시 통제경제 체제가 해방 후 북한에서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승됐다”고 지적했다.

신형기(국문학) 연세대 교수는 “해방 후 북한에서는 모든 사람이 ‘혁명적 신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지만 그것은 결국 일제가 전시에 내걸었던 ‘혁신적 국민’과 다를 바 없었다”며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동원체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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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개혁=‘해전사’는 미군정의 토지정책이 반봉건적 지주제를 온존시켰으며 이를 원형으로 한 정부 수립 이후의 농지개혁은 지주의 이익을 대변한 타협적 해소책에 불과했고 영세소농경영체제의 고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인식’에서 김일영(정치외교학) 성균관대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은 지주를 대변한 것이 아니라 지주가 산업자본가로 전신(轉身)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했다”며 “이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봉건적인 지주-소작인 관계의 해체를 꾀한다는 점에서 분명 개혁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6·25전쟁 때 점령정책으로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의 호응을 유도하려 했지만 이미 1950년 3∼5월에 농지를 분배받은 남한의 농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분단과 6·25전쟁=‘해전사’는 분단의 원인에 대해 북한이나 소련보다는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에 더 비중을 두었다. 6·25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도 ‘북한의 남침’보다 북한을 오판하여 남침하도록 만들었다는 ‘함정설’ 또는 ‘제한전쟁설’ 등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재인식’에서 이정식(정치학)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는 1945년 9월 20일 ‘소련이 점령한 북한지역에 단독정부를 수립할 것’을 지시한 스탈린의 지령 등 새로 공개된 소련문서를 통해 6·25전쟁이 미소(美蘇)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위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에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은 중소(中蘇)방위조약을 체결한 다음, 미국의 봉쇄선인 38선을 돌파하여 남한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편입함으로써 미국의 국제 위신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자 했다”며 “스탈린의 이러한 세계 전략을 부추긴 것은 김일성의 무력통일 의지였고, 여기에 중국의 참전 의지가 전달됨으로써 6·25전쟁이 실천에 옮겨졌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 평가=‘해전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민족 분열과 분단에 앞장서고 남한의 미국 종속화를 낳은 친미주의자이며, 개인적 탐욕과 장기집권으로 민중의 심판을 받은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재인식’은 이 대통령이 확고한 반공, 반일주의자였고 북진통일과 한미방위조약, 수입대체 산업화라는 목적을 위해 기회와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던 마키아벨리스트였다고 평가했다. 흔히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는 계기로 알려진, 6·25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벌어졌던 ‘정치파동’과 ‘발췌개헌’에 대해 김일영 교수는 “북진통일을 목표로 한 이승만이 미국의 전쟁 수행과 동아시아 정책을 놓고 미국의 영향하에 있는 의회 및 야당의 지도자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다툰 사건”으로 정치사적 의미를 해석했다.

특히 대표적 수정주의 이론가인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교수의 부인인 우정은(정치학) 미시간대 교수는 ‘재인식’에서 “이승만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담보로 초강대국인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지대(rent)’를 우려냈고 그렇게 얻어낸 자본을 강한 국가 유지를 위해 재투자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제1권이 출간된 뒤 10년간 6권이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1970년대까지 학계에서 외면해 온 1945∼53년의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본격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현대사를 외세에 의한 분단, 친일파 청산의 좌절, 민족 통일의 염원을 외면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등 오욕이 점철된 역사로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해전사’는 1980년대 대학가에서 ‘의식화 교육’의 필독 교재로 쓰이면서 386세대에게 큰 충격과 함께 현실 변혁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됐다. 학술논문을 편집한 책이었지만 1권이 40만 부 이상 팔렸다. 1권은 초판 출판 직후 판매금지 조치를 당해 원고 일부를 삭제한 뒤 1980년 신군부의 검열을 통과했다. ‘해전사’ 기획을 주도한 학자들 가운데는 강만길(姜萬吉)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2권), 최장집(崔章集)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4권),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 내정자(5권) 등이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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