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女優를 말하다]윤석화가 본‘늙은 창녀…’의 양희경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윤석화 씨
윤석화 씨
마침 공연을 보러 간 날. 오로지 관객에게 기대어 혼자서 끌고 가야 하는 모노드라마를 감당해야 할, 우리의 주인공 양희경(사진)은 외로웠다.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허리를 다쳤던 것이다. 공연을 하느냐, 못 하느냐를 놓고 제작자인 송승환과 연출가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결국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양희경의 결단으로, 진통제를 맞고 무대에 오른 그녀의 모습이, 그 어느 무대에서보다도 숙연하게 느껴졌다. ‘고통이 유익’이라 했던가!

그동안 보았던 그 어느 무대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끌고 가는 극의 초반은 드라마를 더욱더 진지하고 숙연하게 이끌었다. 중반으로 가는가 했더니, ‘아픈 사람이었던가’ 의심이 들 정도로, 양희경 특유의 유연성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고, 못 말려∼” 하기도 했다. 연극은 복사할 수도 없고 NG를 낼 수도 없는, 순간의 예술이자 공간 예술이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관객과 함께 살아 있어야 하는 ‘배우’의 운명에, 그리고 양희경의 연기에 존경과 연민의 감정이 교차했다.

사진 제공 PMC
양희경은 동료이자 내 친구다. 그녀와 내가 연기자로서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연기 폭이 훨씬 더 넓다는 것이다.

그녀는 TV든 영화든 무대든 어디에서나 자신의 몫을 잘하는 소금과 같은 배우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어서인지 그녀는 항상 노련하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10년 만에 그녀가 다시 무대에 올린 ‘늙은 창녀의 노래’에서 ‘늙은 창녀’를 통해 그녀의 이런 장점은 유감없이 드러났다. 늙은 창녀의 소외되고 아픈 삶의 편린들을, 경직되지 않은 부드러움으로 풀어 주었다.

‘정순왕후’(‘윤석화의 정순왕후-영영 이별 영 이별’)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나는, 극 중에 시조창을 하고 살풀이를 하느라 국악에 익숙해진 까닭인지 모르지만, ‘늙은 창녀의 노래’에 흐르는 국악이 양희경이 부르는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받쳐 주는 게 정감 있게 다가왔다.

10년 전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늙은 창녀’ 개인의 기구한 운명이나 삶보다는 오히려 ‘민중’의 삶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에 주목했다. 당시 ‘늙은 창녀’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봤다면, 10년 만에 올린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늙은 창녀’ 개인의 아픔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시대의 변화를 느껴 보기도 했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자로서 많은 재료를 갖춘 전천후 연기자 양희경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오래 자신의 자리를 지켜 주기를, 더 아름답게 빛나기를 기도하였다.

모노드라마는 이야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특정배우의 개성과 매력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하기에, 배우에게는 가장 벅찬 도전이며, 또한 가장 두려운 무대라고 생각한다. 10년 만에 다시 두려움 없는 도전으로 관객들에게 박수 받고 있는 ‘늙은 창녀’, 양희경에게 박수를 보낸다. 31일까지. 화목금 오후 8시, 수 3시 8시, 토 3시 7시, 일 3시. 3만∼5만 원. 우림 청담 씨어터. 1544-1555

윤석화·배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