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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5월 11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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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및 옛 소련 연방국가들, 그리고 러시아의 국경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다.
망명한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카세트테이프 연설이 이란혁명(1979년)으로 이어진 지 26년. 당시의 ‘카세트테이프 혁명’은 이제 휴대전화 메시지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엄지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재 장벽 부수는 ‘엄지혁명’=‘에드사로 갈 것, 검은 옷 착용.’ 이 한 줄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1시간 만에 2만여 명의 필리핀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통령 탄핵이 좌절되자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 결국 2001년 1월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최근 세계를 휩쓴 혁명의 물결 뒤에도 휴대전화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레바논의 ‘백향목혁명’ 과정에서도 휴대전화 메시지는 시위대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고 최근 전했다.
오렌지혁명 당시 ‘포라(때가 왔다)’라는 학생조직을 이끈 블라디슬라프 카스키우 씨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내용을 전파하고 동지를 모았다”며 “첨단기술이 없었다면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부정선거 음모를 막고 일당독재를 종식시킨 아프리카의 가나, 2002년 반(反)차베스 쿠데타를 무력화시킨 베네수엘라, 지난해 이라크전쟁을 지지한 총리를 물러나게 한 스페인 등에서도 문자메시지를 통한 대중 결집은 빛을 발했다.
▽민주화의 무기인가, 포퓰리즘인가=이처럼 휴대전화가 ‘혁명의 무기’가 된 것은 휴대전화를 통해 사람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전파하는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학 칼럼니스트 하워드 라인골드 씨는 첨단 장비에 능숙한 현대인을 ‘영리한 군중(smart Mobs)’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이들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사회의 각종 이슈나 사안에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들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직접 실력 행사에 나선다”고 정의했다.
클래런스 페이지 시카고트리뷴 칼럼니스트가 디지털카메라를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에 빗대 ‘대량영상무기(weapons of mass photography)’라고 지칭한 것도 이런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반(反)엄지혁명’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는 5만 명의 인원을 투입해 ‘황금 방패’라는 새로운 감독체계를 구축하는 등 검열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단’은 지난 한 해 동안 71명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반정부 활동으로 수감됐다고 밝혔다.
인터넷의 특성인 익명성 때문에 단순하고 무책임한 여론이 형성될 우려도 제기된다. 또 ‘디지털 지하드’ 등 테러범들이 쉽게 인터넷을 악용한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 발생한다. 짧은 메시지에 내용을 담고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감정과 구호에만 치우쳐 합리적인 정치과정을 좌초시키는 ‘여론몰이식 정치’가 일상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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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21세기 민주화는 ‘엄지’가…휴대전화-인터넷 벽 허물어
중동의 민주화 바람, 중앙아시아의 민주혁명, 중국의 반일 시위….
올해 들어 세계를 뒤흔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의 뒤에는 예외 없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있다. ‘모바일 파워’, ‘인터넷 파워’가 ‘피플 파워’를 만들어 낸 것이다.
활자매체가 근대 혁명을 이끌었고 TV가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다면 이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엄지 혁명’이 새로운 정치권력으로 등장해 통제사회의 벽을 허물고 있다.
최근 고교 1학년생들이 중심이 된 서울 광화문 일대의 촛불집회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 반대, 2002년 대선 때의 ‘노빠 부대’ 바람을 경험한 한국은 이미 ‘휴대전화 시위’의 선진국. 하지만 중국을 비롯해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지의 통제국가들에서는 이제 새삼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동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른바 ‘모바일 데모크라시(Mobile Democracy)’ 바람이다.
특히 중국이 좋은 예다. 지난달 9일 베이징(北京)에 모여 반일 시위를 벌인 1만여 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은 대부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으로 약속을 잡았다. 대자보 시위 때와는 달리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수만, 수십만 명의 군중을 동시다발적으로 불러 모았다.
중국 당국은 5만 명의 검열 인원을 동원해 특정 검색어를 막는 방식으로 인터넷 메시지를 통제했지만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무방비였다. 5·4운동 기념일인 4일엔 당국이 오히려 “반일 시위를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휴대전화로 내보냈을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레바논을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도 휴대전화 메시지는 시위대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 중앙아시아의 혁명에서도 온라인 포럼과 휴대전화 메시지가 사람들을 결집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
한동섭(韓東燮)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독재국가를 무너뜨리는 힘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진 중인 ‘민주주의 확산 법안’보다 오히려 일반인들의 엄지손가락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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