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네팔 의료봉사 펼치고 온 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

  • 입력 2005년 2월 24일 15시 41분


코멘트
20여년간 네팔 의료봉사와 한국-네팔 교류 활동을 펼쳐 온 이근후(오른쪽), 이동원 박사 부부, 이들 부부가 이끄는 네팔캠프 주최 '네팔화가 초청 전시회'가 서울 삼청동 찻집 '서울에서 두번째로 잘하는 집'에서 열리고 있다. -강병기 기자
20여년간 네팔 의료봉사와 한국-네팔 교류 활동을 펼쳐 온 이근후(오른쪽), 이동원 박사 부부, 이들 부부가 이끄는 네팔캠프 주최 '네팔화가 초청 전시회'가 서울 삼청동 찻집 '서울에서 두번째로 잘하는 집'에서 열리고 있다. -강병기 기자
‘예티의 집’을 아십니까?

예티(yeti)는 히말라야에 살고 있다는 네팔 전설 속의 설인(雪人)을 의미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 겨울 추위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 공원의 푸른 나무들이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얀색 2층집이 있다.

집 주변에는 아무런 표지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예티의 집’이라고 부른다.

집 주인인 이근후(70·전 이화여대 부속병원 정신과 과장), 이동원 박사(68·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부부의 남다른 네팔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여년간 네팔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온 두 사람은 “네팔인들은 설인을 사람과 신(神)을 돕는 선한 존재로 여긴다”며 “예티의 집은 상상력과 꿈, 미래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최근 9박 10일 일정으로 네팔 의료봉사와 문화탐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 박사 부부를 만났다.

○네팔캠프

이들 부부는 89년부터 의료계, 문화계 지인들과 함께 매년 의료봉사에 문화탐방, 히말라야 트레킹 프로그램을 곁들인 네팔캠프를 열어왔다. 모두들 생업이 있어 휴가를 내기 어려운 만큼 설과 추석 무렵으로 정례화했다.

올해 설 연휴를 이용해 24명이 다녀온 이번 캠프에서는 이근후 박사가 수도 카트만두에서 간질 환자에 대한 진료와 교육을, 이곳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에 있는 포카라에서는 치과의사인 이후승 박사(64)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치과진료를 했다. 부모와 함께 캠프에 참가한 민참마로(12·신용산초교 6년), 김승재 군(16·용문고 1년) 등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인들도 즉석에서 보조원으로 일했다.

“그렇다고 모든 일정이 의료봉사활동으로 짜여진 것은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네팔의 문화와 역사를 알고 네팔인과 교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탐방 프로그램도 있지요.”(이근후 박사)

캠프 기간에는 도예가 장무식 교수(상지대 도예과)가 카트만두 시내 붓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그 수익금 전액을 네팔 간질협회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번 캠프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출발 이틀 전인 1일 네팔 국왕이 내각을 해산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해 네팔 국내와 통신이 두절된 것. 당초 참가하기로 했던 34명 중 10명이 출발 전 포기했다.

“네팔 사람들과 진료 일정을 약속했는데 취소할 수는 없었죠. 안전에 문제만 없다면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가자는 참가자들이 많아 네팔행을 강행했습니다.”(이동원 박사)

다행히 반군이 출몰하는 치트완 지역을 방문일정에서 뺀 것을 제외하고는 큰 차질은 없었다. 어렵사리 찾아온 캠프단 일행을 네팔 사람들은 더욱 반가워했다.

○히말라야에서 사람을 발견하다

매년 설과 추석연휴를 이용해 네팔캠프를 열고 있는 이근후 박사가 네팔 간질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사진제공 가족아카데미아

이들 부부가 네팔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2년으로 거슬러 간다. 대학 시절부터 등산에 빠져있던 이근후 박사는 히말라야 마칼루봉(8463m) 원정대원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정상 정복의 기회는 후배 산악인에게 양보하는 대신 학술대원으로 6개월간 네팔에 머물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산이 좋아 네팔을 찾았던 그가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네팔 사람들의 맑은 영혼과 문화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으로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큰 병이 아닌데도 약이 없어 제대로 치료조차 못하는 비참한 현실도 보였다. 그래서 84년부터 한국간질협회의 도움으로 의약품을 보내기 시작했고, 86년 당시 재직하고 있던 이화여대의 후원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자 함께 참가하겠다는 지인들도 하나 둘씩 늘어났다.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와 소설가 박완서 씨, 시인 박노해 씨 등 400여 명이 이 캠프에 참가했고 참가자 대부분이 귀국 후에도 네팔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박사 부부의 집에서는 의사인 큰딸을 비롯해 2남 2녀의 자녀들까지 수시로 네팔을 찾는다.

“히말라야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고쳐주는 묘한 치유력이 있다”는 것이 이동원 박사의 말. 젊은 시절 방황하던 자녀들이 네팔에 한번 다녀온 뒤로는 부쩍 성장하더라는 것.

그러면서도 남편의 유별난 네팔 사랑에는 조금 질린 표정이다.

“2003년 남편이 왼쪽 눈의 시력을 잃고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 네팔행을 앞두고 무릎 깁스까지 해 온 가족이 말렸지만 허사였죠. 휠체어를 탄 채 떠났던 남편이 귀국 때는 깁스 풀고 왔다며 웃더군요.”

○“나마스테” “단네밧”

캠프 마지막 날에는 언제나 ‘나마스테 리셉션’을 갖는다. ‘나마스테’는 네팔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말. 89년 의료봉사단이 당시 그들을 도운 셰르파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 것이 계기가 됐는데 최근에는 화가 소설가 음악가 교수 등 네팔 문화계 인사들도 초대한다.

카트만두 하야트 호텔에서 열린 이번 리셉션에서는 여기저기서 “단네밧”이라는 말이 오갔다. 네팔어로 ‘고맙다’는 뜻이다. 21년째 변함없이 계속되는 이들의 의료봉사와 한국-네팔 교류에 대해 네팔 측 참가자들이 건네는 인사말이다.

그러면 이근후 박사가 꼭 돌려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얼마 안 되는 약(藥)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만나 우리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더 큰 약을 얻고, 더 큰 장사를 하고 갑니다. 단네밧!”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봉사란 베푸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 그의 말처럼 캠프에 참가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부자’가 돼 봉사활동을 이어간다.

캠프 참가자 대부분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가족아카데미아(www.familyacademia.org)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를 실천한다는 취지로 95년 이 박사 부부가 만든 사단법인체. 현재 사회봉사 사회교육 연구조사 등 5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7월에는 네팔의 우표 디자이너로 유명한 카르마차야 씨를 서울로 초청해 전시회를 갖는다.

가족아카데미아의 사무실로도 쓰고 있는 ‘예티의 집’. 이곳에서 노 부부는 계속 꿈을 키워가고 있다. 나이와 세월에도 녹지 않는 만년설 같은 꿈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