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별아]“TV끄니 가족이 보이더라”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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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나가 보면 810동 우리 집 복도에서 베란다를 통해 811동 집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집안의 풍경은 605호와 1507호가 별반 다르지 않다. 명멸하는 TV 앞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열심히 채널을 돌리고 있다. TV가 웃으면 그들도 웃고, TV가 울면 그들도 운다. 얼마나 고단한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래도 TV를 끌 수가 없다. 왕왕 떠들어대는 TV가 사라진 후의 적막을 견딜 수 없다. 바야흐로 현대의 가족은 ‘함께 TV를 보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가족은 함께 TV보는 사람들?▼

가족의 위기, 가족의 붕괴, 가족의 해체에 대한 염려의 아우성이 터져 나온 지 오래되었다. 가족을 살려야 한다, 가족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캠페인성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지키려는 것이 ‘가족’인가 가족을 통한 ‘행복’인가를 생각하면, 구호가 높아질수록 공허감 또한 크다. EBS 특집 다큐멘터리 ‘TV가 나를 본다-20일간 TV를 끄고 살아보기’가 화제가 되는 것은 바야흐로 지금이 ‘가족’을 지키려고 발버둥치기보다 가족의 ‘행복’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일간 TV를 ‘끊은’ 가정에서는 가족들 간의 대화가 늘고 독서가 많아지는 등 가족생활 자체가 달라졌다고 한다. 리모컨을 움켜쥐고 소파에 길게 드러누웠던 아버지는 아이들의 숙제를 챙기고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으며, 드라마에 울고 웃던 어머니와 만화영화가 끝나자마자 문방구로 달려가 캐릭터 상품을 사들이던 아이들은 꽃을 가꾸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당장의 공황 상태는 피할 수 없는 금단 현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야말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TV에 중독되어 감성을 황폐화시켰는가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어린이 TV 바로보기 교육의 일환으로 ‘TV 안 보기 운동’을 벌인 사례들을 알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인 우리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세계를 만들어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안교육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제기한 이 운동은 TV로 인해 가족들 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아이들이 TV를 통해 왜곡된 성 역할과 과다한 구매 욕구와 폭력을 학습하며, 자연 속에서 또래들과 접촉하며 성장하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TV 중독이 단순히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잘못된 습관과 일중독, 가족놀이 문화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TV 안 보기 운동’은 일종의 ‘가족 치료’ 프로그램이 되었다.

“애완견을 없애면 강남 가족이 해체되고, TV를 치워버리면 강북 가족이 해체된다”는 속언은 특정 지역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관계의 부재, 문화의 부재를 꼬집은 서글픈 말일 테다. ‘운동’을 제안한 측에서는 대체 프로그램으로 아이들과 함께 달을 보고 스케치북에 그림일기를 써보도록 권유했는데, 전시된 결과물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번잡한 지상을 잠시 잊고 하늘을 쳐다본 가족들은 비로소 곁에 있는 서로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깨달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잃어버린 꿈은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복원되고 있었다. 물론 TV에서 꾸며 보여주는 현란한 그림보다 턱없이 소박하다. 하지만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기 전에는 절대 모른다.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듯이.

▼마주보며 되찾은 소박한 행복▼

TV를 끄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족들끼리 리모컨 쟁탈전을 벌이고 안방에 TV를 한 대 더 사들이는 일보다 훨씬 쉽다. 자, 이제 버튼을 누른다. TV를 끄면 가족이 보인다. 어쩌면 나를 꼭 닮은 그 못난 얼굴들과 만들 새로운 행복 또한 보일는지 모른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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