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힘 키우려 체중 불리지만…“예뻐지고 싶은 여자예요”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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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최소라(오른쪽), 이혜란(왼쪽) 조의 태그매치 경기 모습. 이날 일본선수들과의 싸움에서는 아쉽게도 패배했지만 이들은 “앞으로 더욱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강병기기자
이달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최소라(오른쪽), 이혜란(왼쪽) 조의 태그매치 경기 모습. 이날 일본선수들과의 싸움에서는 아쉽게도 패배했지만 이들은 “앞으로 더욱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강병기기자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한 채 이제는 비인기종목이 돼버린 프로레슬링. 한때 1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활동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40여명의 선수들만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인기가 없어지니 선수가 줄고, 선수가 줄어드니 더욱 인기가 없어지는 악순환.

하지만 올해는 침체한 프로레슬링계에 기억할 만한 새 바람이 불었다. 최소라(21·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 3년), 이혜란씨(23·선문대 무도학과 4년). 이 두 명의 여대생이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하고 지난달 31일과 이달 4일 일본과 한국에서 데뷔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전적은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패배. 남자들도 이제는 찾지 않는 프로레슬링계에 겁 없이 뛰어든 두 여자 이야기.

○ 멀쩡한 여대생이 왜?

어릴 적부터 태권도, 검도, 권투 같은 격한 운동을 좋아했던 최씨가 레슬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고 3때. 부모님은 건성으로 “대학이나 가서 해라”고 말렸고 그는 이를 ‘대학가면 해도 된다’로 받아들였다.

“어릴 때 프로레슬링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TV를 본 후에는 오빠가 항상 저를 데리고 레슬링을 했고요. 아마 그때부터 마음속에 레슬링이 자리 잡기 시작했나 봐요.”

공부와 아르바이트 때문에 2년여간 꿈을 미뤄오다가 결국 올 1월 마음을 정했다. 어머니와 함께 직접 세계레슬링협회(WWA) 세계챔피언인 이왕표 선수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찾아간 것.

“그냥 해보겠다는 여자들의 전화는 종종 있어요. 하지만 ‘물건’이 될 만한 사람이 없어 대부분 돌려보냈죠. 한번 와보라고 했는데 저 자신도 ‘이렇게 멀쩡한 애가 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습니다.”

한국프로레슬링연맹 최류 기획실장의 말이다.

최씨에 비해 이씨는 레슬링 입문이 좀 더 자연스러웠다. 합기도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후 2학년 때 이왕표 관장의 격기도(프로레슬링을 무예화한 것) 수업을 듣게 된 것.(이관장의 체육관에서는 레슬링 이외에도 격기도와 태권도도 가르치고 있다)

“이 관장님 체육관에서 격기도를 배우다가 자연스레 여자프로레슬러가 돼 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죠. 처음에는 ‘여자가 무슨 레슬러냐’며 거절했지만 차츰 레슬링의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씨와 최씨는 한 팀을 이뤄 지난달 31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이달 4일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태그매치(2명씩 편이 돼 치르는 경기) 데뷔전을 치렀지만 상대방인 일본 선수들은 이제 갓 입문한 선수들에게는 너무 벅찼다.

○ 드롭킥, 인간병기

최씨의 특기는 드롭킥과 보디슬램, 이씨는 돌려차기와 드롭킥이 주특기다. 드롭킥이란 몸을 날려 두발로 상대방을 차는 기술, 보디슬램은 상대방을 들어올려 앞으로 내 던지는 기술이다.

이씨는 합기도, 격기도, 태권도를 모두 합해 12단에 이를 정도. 별명도 ‘인간병기’이다.

매일 5시간씩 하는 운동은 기초체력 훈련과 기술연마로 나뉜다. 스쿼트(앉았다 일어서기), 팔굽혀펴기, 버피(팔 짚고 엎드렸다 일어서기), 낙법 등을 수백 번씩 하다보면 오후 11시를 넘기기가 일쑤다.

“링 반동을 이용하는 훈련을 받을 때는 등과 겨드랑이가 전부 퍼렇게 멍이 들어요. 링 줄이 보기보다 무척 단단하거든요. 쇠기둥에 부딪친다고 생각하면 되죠.”

이씨는 “체력훈련도 고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기술을 지도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몸과 몸을 맞대고 하는 운동이라 남자 사범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 예를 들어 보디슬램을 하려면 손을 가랑이 사이에 넣어 들어 올려야 하는데 남자 사범이 여자 선수에게 시범을 보이기도, 여자 선수가 남자 사범을 상대로 연습을 하기도 애로점이 많다.

“저는 괜찮은데 사범님이 더 곤란해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최씨의 말이다.

지금까지 여자 프로레슬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2년 3월 옥경자씨(당시 18세)가 남자선수들과 경기를 가진 이래 박정옥, 유미숙, 오순명, 김경희씨 등 여성 선수들이 맥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현재는 이씨와 최씨를 제외하면 사실상 맥이 끊어진 상태.

등록된 선수는 몇 명 있지만 벌써 2년이 가깝도록 경기를 하지 않고 있다.

○ 지금의 소원은 1승이라도 해봤으면…

기술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그에 맞는 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최씨는 8kg이나 몸을 불려 현재 65kg이다. 남들은 단 몇 그램이라도 빼기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나는 별 생각 없는데 남들이 다 안쓰러워하더라고요. 너 괜찮으냐고. 몸이 부어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운동하느라 몸무게가 늘어난 건데요 뭐.”

이씨는 원래 무도를 했기 때문에 몸을 불릴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매우 남성적이고 거친 운동. 하지만 경기에 임할 때는 곱게 화장도 해야 한다.

“예쁘게 보여야 하잖아요.”

이씨는 남자친구가 있다. 합기도에 레슬링을 하는 이씨지만 남자친구에게는 무척 잘해준다고 한다. 가끔 ‘사고’가 생기는 것이 탈이지만….

“한번은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데 고등학생 3명이 제 가방을 훔쳐가더라고요. 그래서 뛰어가서 잡아가지고 좀 때려줬죠. 꼼짝도 못하던데요.”

이들의 꿈은 당연히 세계무대에 진출해서 활약하는 것. 최씨는 이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유니폼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라기 보다 제 이미지와 맞는 옷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디자인도 해보고 옷가게도 가보고…. 어떤 선수하면 떠오르는 특징들이 있잖아요.”

말똥만 굴러가도 웃음이 터질 나이. 식욕도 왕성할 때다.

“레슬링하고 나서 좋은 것은, 많이 먹어도 되는 타당한 이유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다만 같은 닭고기를 먹어도 치킨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식 요리가 아닌 삼계탕 같은 종류로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항상 체력과 근육을 염두에 둬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력을 더 쌓아서 일본이나 미국에서 한국프로레슬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꿈”이라며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선 1승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바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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