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본 백남준 ‘존 케이지 퍼포먼스’

  • 입력 2004년 10월 7일 18시 56분


코멘트
백남준(왼쪽)가 6일 미국 뉴욕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존 케이지에게 바침' 이란 퍼포먼스를 시작하면서 장조카이자 매니저인 켄 백 하쿠다씨의 스웨터와 모자에 붓질을 한 뒤 즐거워하고 있다. -뉴욕=허문명기자
백남준(왼쪽)가 6일 미국 뉴욕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존 케이지에게 바침' 이란 퍼포먼스를 시작하면서 장조카이자 매니저인 켄 백 하쿠다씨의 스웨터와 모자에 붓질을 한 뒤 즐거워하고 있다. -뉴욕=허문명기자
미국 뉴욕 소호에 있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스튜디오에 6일 오전 9시(현지시간)부터 국내외 취재진과 미술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백남준씨가 펼치는 ‘존 케이지에게 바침’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10시 40분경, 푸른색 한복 상의에 검은 목도리를 두른 백씨가 간호사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작업실에 준비해놓은 피아노 옆에 자리 잡은 그는 원색 물감들이 얹혀있는 팔레트를 들고 그의 장조카이자 매니저인 켄 백 하쿠다씨(54)의 스웨터와 모자에 붓질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10여분 뒤 피아노 앞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피아노 몸체와 건반에도 물감 칠을 하더니 잠시 후 오른손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하쿠다씨가 옆에서 아리랑 악보를 들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하쿠다씨가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악보를 찢어 입에 넣고 씹었다. 백씨는 아이처럼 웃으며 조카를 바라보았다. “종이를 삼킬까요?”라고 조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삼켜. 하하하.” 조카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종이조각을 씹어 삼키고 종이조각 일부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어 백씨가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하쿠다씨와 스튜디오 스태프 한 사람이 피아노를 대신 밀어 넘어뜨리는 것으로 퍼포먼스는 끝났다.

백남준은 이날 신작 ‘메타11’을 공개했다. 벽걸이 TV 6대를 양옆으로 세 대씩 붙여 만든 이 작품은 ‘9·11 테러’ 때 형제처럼 힘을 합쳐 재난을 극복한 뉴욕 시민들에 대한 헌사를 담고 있다. 양쪽의 TV들이 쌍둥이 빌딩을 의미한다. 백씨가 40여 년 동안 살아 온 제2의 고향 뉴욕에 대한 애정을 담은 비디오 작품이다.

이날 행사에는 구겐하임미술관 존 핸하르트 수석 큐레이터를 비롯, 스미소니언 소속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의 엘리자베스 부름 관장 등 미국 미술계의 대표적 인사들이 참석했다. 부름 관장은 “백남준은 선구적인 자기세계를 만든 위대한 작가”라며 “그의 비디오 작업은 우리 모두에게 미래를 보는 눈을 갖게 한다”고 평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백남준과의 일문일답▼

기자회견에서 백남준씨는 간단한 한국말로 답했다.

―‘예술은 사기’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면 재미있으니까.”

-피아노는 왜 넘어뜨렸나요.

“할 일이 없어서. 하하하.”

―소원이 무엇인가요.

“한국에 가는 거야. 죽으면 한국에 묻힐 거야.”

―한국에 가면 뭘 하시려고요.

“어려서 자란 서울 창신동에 가고 싶어. 그 집에는 대문이 있었어.”

―존 케이지는 어떤 존재인가요.

“내 아버지야, 아버지.” (존 케이지는 서양 전위음악의 선구자로 백씨에게 전위적 상상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예술이고 인생이고 다 힘들지 않으신가요.

“힘들지. 어쩔 수 없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야.”

―후배 예술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열심히 일하고 많이 놀아라.”

발음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앞에서 하쿠다씨의 아들이 자신을 비디오카메라로 찍는 것을 보고 깔깔거리며 반기기도 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