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손기정선수 1위로 골인”…우승때 “한국 학생” 지칭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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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손기정 선생.- 동아일보 자료사진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손기정 선생.-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der Koreaner)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그가 이제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조직위가 당시 남자마라톤 레이스를 장내에 공식 중계방송하면서 고 손기정(孫基禎) 선생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지칭한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본보가 최근 입수한 독일역사박물관(DHM) 독일방송기록보관실(DRA) 자료에 따르면 조직위측은 12만 관중이 운집한 베를린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장내 마라톤 중계에서 손기정 선생을 ‘한국 대학생(실제 양정고보 5학년)’ ‘한국인’으로 표현했다.

“한국인 손기정선수 1위”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생중계(only 오디오)

일제 강점기 하에서 출전한 손 선생은 그 동안 베를린올림픽조직위가 작성한 공식문서엔 ‘일본 대표 키테이 손’으로만 표기돼 있었다.

지금부터 꼭 68년 전인 1936년 8월9일 열린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엔 27개국 56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며 4년 전 열렸던 LA올림픽 챔피언인 후안 카를로스 사발라(아르헨티나)가 선두로, 손 선생은 34번째, 고 남승용 선생은 49번째로 주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당시 마라톤 실황중계는 2시간 40분 가까운 레이스 내내 이어졌으며 이번에 본보가 입수한 자료는 이를 3분39초 분량으로 편집한 CD자료다.

“다섯 개의 그룹 중 일본팀은 첫 번째에 있습니다. 그들은 한번도 올림픽에서 뛰어보지 않은 신예들로 이름은 남(남승용), 시오아쿠(염전 인부 출신의 일본선수·30km지점에서 기권), 손(손기정)입니다. 일본팀 감독의 말로는 ‘손’을 이기려면 태양이 작열하든, 비가 오든, 자갈밭이든, 풀밭이든 초인적으로 뛸 수 있어야 한답니다. ‘손’이 결국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손 선생은 당시 29km 지점에서 사발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서 결승선까지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단독 질주 했으며 사발라는 32㎞지점에서 기권했다.

그는 생전에 “당시에는 뒤돌아보는 것이 비겁한 행위로 여겼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창희기자 insight@donga.com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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