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눈높이 육아]엄마 안떨어지는 아이

  • 입력 2004년 6월 20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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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 준이는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 엄마가 설거지를 할 때면 발밑에 앉아서 책을 읽어내라고 떼를 쓰고, 엄마가 화장실을 가면 문을 열어놓으라며 울고, 엄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엄마 치마를 붙잡고 따라나선다.

유치원에 보내려던 시도는 일주일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것이다. 원하던 대로 엄마와 있게 된 준이는 하루 종일 심심하다고 엄마를 들볶았다. 지친 엄마는 놀이터에 나가 놀게 하려 했지만 아이는 기겁을 하며 오히려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아빠가 놀아주려 해봤지만 준이는 매몰차게 거부하고 더욱 엄마에게 달라붙었다.

분리불안장애는 아이가 친숙한 사람이나 장소로부터 떨어질 때 심한 불안을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아이들은 만 3세 정도가 되어야 낯선 사람과 장소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부모로부터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유치원에 갈 나이에도 부모와 못 떨어지고, 부모가 없으면 우울해하며 아무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분리불안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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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불안 증상은 이사, 입원, 입학 등의 환경변화나 부모가 싸우거나 아플 때, 혹은 동생이 태어났을 때 등 심리적 스트레스가 클 때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분리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이의 기질적 불안과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이다. 외부적인 요인들은 내진하고 있던 불안을 밖으로 드러나게 해줄 뿐이다. 준이의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준이도 엄마를 닮아 겁이 많고 예민한 아이로 태어났다. 육아에 자신이 없는 엄마는 갈팡질팡하며 힘들어했기에 아이를 편안하고 일관적으로 키울 수 없었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떼를 쓰게 되었고, 마음이 약한 엄마는 아이에게 질질 끌려다니게 되었다.

떼쓰는 기술이 늘어갈수록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해졌다. 아이는 엄마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엄마의 짜증은 늘어갔다. 더구나 놀이터와 유치원에서 자기 고집대로 되지 않는 뜨거운 경험을 하며 아이는 더욱 엄마 이외의 사람들을 거부하게 되었다. 그렇게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분리불안에 대응하는 방법은 엄마와 완전히 떨어뜨려 어쩔 수 없이 불안을 견디게 하는 고문에서부터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 주는 포기까지 다양할 수 있지만, 적절한 치료는 그 중간쯤에서 일관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먼저 아이의 고집을 3분 이내에 말, 벌, 매의 절차를 거쳐 꺾는 것으로 치료는 시작됐다.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고, 의사의 응원에 힘을 얻은 엄마는 승리했다. 아이의 떼가 줄어들자 엄마는 아이에게 더 친절할 수 있었고, 육아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엄마가 덜 불안해지니 아이의 불안도 줄어들었다. 불안장애는 결국 전염병인 것이다. 조금씩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한 준이는 드디어 유치원에 가게 됐다.

10대가 되면 아이들은 붙어 있어 달라고 애원을 해도 떨어져 나간다. 분리불안에 대해 너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회성과 학습에 큰 장애가 될 정도로 분리불안을 보인다면 먼저 아이와의 관계를 검토해보고 아이를 일관적으로 대하고, 그래도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소아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소아정신과 전문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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