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눈높이육아]말 늦어 짜증많은 아이

  • 입력 2004년 6월 13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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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배기 준이는 블록도 잘 쌓고 대소변도 가리지만 ‘엄마’, ‘쉬’, ‘밥’ 같은 아주 간단한 낱말만 말한다.

엄마는 준이가 그래도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고 몇 안 되는 어휘와 표정, 행동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말이 좀 늦나보다’ 여기고 있지만, 아이의 고집이 점점 세지고 놀이방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아 고민이다.

엄마는 소아정신과의 발달평가 결과 준이가 발달성 언어장애의 가장 흔한 형태인 ‘표현성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에서 언어 발달이 늦으면 정신지체나 자폐를 의심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너무 걱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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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의 언어 발달 지연은 인간이 진화하며 가장 나중에 발달된 언어를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미성숙한 신체적 이유 때문이었지만 부모의 양육 태도도 한몫했다. ‘우’라고만 해도 우유가 입에 들어오고, 손가락질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환경에서 준이는 언어 발달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주위로부터의 언어 자극이 많아야 언어발달이 되는 것인데 아이는 그런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었다. 말보다는 고집과 짜증이 더 효과가 있는 집과는 달리 말로 표현해야 하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놀이방에서 준이는 당연히 겉돌 수밖에 없었다.

언어장애는 크게 말은 알아듣는데 말로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표현성 언어 장애’와 말을 이해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수용성 언어 장애’가 있다.

연령보다 언어 발달이 늦다는 것을 뜻하는 발달성 언어장애는 초등학생 중에서도 3∼10%를 차지할 정도로 많지만 부모님들은 이를 간과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커갈수록 원하는 것이 복잡해지지만 정확히 표현이 안 되므로 아이는 자꾸 짜증을 내게 되고,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니 거칠어지기 쉽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면 언어 발달 장애 아동의 절반 정도가 학습이나 또래 관계에 상당한 지장을 경험하고 이로 인한 이차적인 심리적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만 2세가 되었는데도 두 낱말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 하고, 만 3세가 되어도 세 낱말로 자기의 의사 표현을 못하면 발달성 언어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다.

물론 청력에 이상이 있거나 자폐 등의 다른 문제가 없다면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말문이 트이게 된다. 그러나 불필요한 학습과 성격적인 문제들이 발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기진단과 언어치료를 포함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치료는 일찍 할수록 효과가 좋다.

준이는 언어치료와 언어로 표현해야만 요구를 들어주는 엄마의 일관적인 양육태도에 힘입어 조금씩 말문이 트이고 있다.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필요성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준이는 놀이방에서도 더 이상 겉돌지 않는다. 조금은 늦었지만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소아신경정신과 전문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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