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눈높이 육아]머리카락 스스로 뽑는 탈모광증

  • 입력 2004년 6월 6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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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다가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것이었다.

피부과에서는 원형탈모증이라며 주사를 놓고 연고를 줬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해서 노력했지만 증세는 더 심해져 밖에 나갈 때 모자를 씌워야 할 정도가 되었다. 답답해진 엄마는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아이의 머리가 빠질 때 먼저 의심해야 하는 원형탈모증은 말 그대로 모발이 동전 모양으로 경계가 뚜렷하게 저절로 빠지는 병이다. 원형탈모증은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발병하거나 부위가 넓거나 수가 많을 때에는 치료를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피부과 치료를 받으면 완치되곤 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정신과에서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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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희의 머리카락이 빠져있는 형태는 원형탈모증과 달랐다. 벌레가 뜯어먹은 것처럼 불규칙하고 듬성듬성 빠진 것이 저절로 빠진 게 아니라 아이가 뽑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영희는 자신이 뽑았다는 사실도, 심적으로 불편하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탈모광증의 증상이었다.

탈모광증은 머리카락을 뽑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병으로 우울증과 강박증과 관련이 있다. 주로 여아에서 많고 치료가 쉽지 않은 이 질환은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혼자 남겨져있어야 하는 상황을 겪을 때 시작되곤 한다. 머리카락을 긴장감을 풀거나 스스로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엄마는 심한 고부 갈등 때문에 이혼을 마음먹고 있다가 영희를 갖게 되었다. 당연히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고 아이를 미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분가를 하며 마음이 좀 편해진 엄마는 터울이 많이 나는 둘째를 가졌고, 둘째에게는 첫째에게 느끼지 못했던 애틋한 정을 느꼈다. 말을 잘 듣고 공손하고 눈치가 빠른 초등학생으로 성장한 영희는 질투도 하지 않고 남동생을 잘 돌봐줬다. 그러나 이제 모든 가족이 평화를 만끽하려는 순간 영희의 머리카락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영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놀이치료 시간에는 부모와 동생은 함께 놀고 자신은 따로 공부를 하는 가족그림을 그리거나, 엄마에게 야단맞는 소꿉장난을 하곤 했다. 소외감에 익숙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탈모광증의 치료에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위로하고 개선책을 찾는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처리 기술 및 대체반응연습, 가족치료, 그리고 약물치료가 꼭 필요하다.

영희가 겪었을 슬픔과 외로움을 이해하며 엄마는 큰딸과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였고, 아이는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엄마와의 거리감이 좁혀질수록 머리카락을 뽑으며 외로움을 삭여야 할 필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영희는 이제 다시 머리핀을 꽂을 수 있게 되었다.

소아신경정신과 전문의 ·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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