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열전’의 김구役 김세동 “백범선생에 매료되었지요”

  • 입력 2004년 5월 25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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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자객열전’에 나오는 백범 김구 역의 김세동씨. 그는 “백범일지에는 인간적이고 수수한 백범의 면모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사진제공 JT컬쳐
연극 ‘자객열전’에 나오는 백범 김구 역의 김세동씨. 그는 “백범일지에는 인간적이고 수수한 백범의 면모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사진제공 JT컬쳐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갑구나. 장사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리라.”

1931년 12월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의 한 식당. 백범 김구는 일왕(日王)을 격살하러 가는 이봉창을 격려한다. 두 사람은 먼저 보낸 동지들의 거사가 실패했다는 소식에 가슴 아파한다. 왜 폭탄은 늘 불발이었던 것일까?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자객열전’(박상현 작·이성열 연출)에서는 돈이 없어 자장면 한 그릇도 제대로 사먹지 못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실제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극단 목화 출신의 중견배우 김세동씨(41)는 때로는 백두산 호랑이처럼 무섭게 호통 치면서도, 먼 길 떠나는 동지에게 시래깃국 한 그릇이라도 먹여 보내고자 했던 자상한 백범의 모습을 절절하게 연기한다. 김씨는 “극중에서 보여주는 백범과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모습은 어찌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비참하지만 실제 그들이 처했던 현실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백범과 이봉창 의사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 없어 성능 좋은 폭탄을 구하지 못했던 것. 결국 일본에 건너간 이봉창은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했지만 그 폭탄은 경비대가 탄 말의 발굽에 상처를 입히는 데 그치고 만다.

“거사는 실패했지만, 사실 일왕 앞에 폭탄을 던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봉창 의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 사건은 중국인들도 자신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했다며 상하이임시정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지요.”

이 연극은 임정시절 백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기(史記)에 나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자객들, 러시아 혁명가들, 미국의 아나키스트 에마 골드만, 체첸의 여전사까지 동서고금의 자객과 테러리스트들이 왜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며칠 전에는 공연을 마친 뒤 70대의 노 관객이 분장실로 김씨를 찾아왔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네 살 때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연설하던 백범 선생을 보고 감격해 만세삼창과 애국가를 부른 기억이 있다”며 김씨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백범일지’를 세 번째 읽고 있는데, 책을 읽을수록 백범이 ‘위대한 지도자’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면서도 ‘문화의 힘’을 중요시했던 백범을 연극을 통해서라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02-745-0308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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