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설 ‘황진이’ 에로티시즘 빗장 걷었다

  • 입력 2004년 2월 18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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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판 ‘황진이’의 삽화. 기생이 된 황진이(오른쪽)는 학식과 인덕이 높다는 화담 서경덕을 찾아 유혹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사진제공 대훈서적
북한판 ‘황진이’의 삽화. 기생이 된 황진이(오른쪽)는 학식과 인덕이 높다는 화담 서경덕을 찾아 유혹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사진제공 대훈서적
북한의 문예작품이 출간되려면 노동당 선전선동부 문학과와 내각 문화선전성 출판국, 북한작가동맹 3자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같은 ‘3자 심의’는 2002년 11월 간행을 허락한 작가 홍석중씨(62)의 장편소설 ‘황진이’에서부터 ‘상당히 농밀한 수준의 에로티시즘’까지도 허용키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황진이’(문학예술출판사) 북한판을 국내에 직수입해 시중에 판매키로 한 대전 대훈서적이 최근 입수한 ‘황진이’ 원본을 통해 확인됐다. 작가 홍씨는 ‘임꺽정’의 작가인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憙·1888∼1968)의 손자다.

북한판 ‘황진이’를 국내에 알린 문예지 ‘통일문학’ 편집위원 김재용 교수(원광대·국문학)는 “2002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보통강호텔 내 서점에서 ‘최근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라며 ‘황진이’를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북한문학 전문연구자인 김 교수는 “광복 후 발간된 북한 소설들을 샅샅이 검토했지만 ‘황진이’는 이전 소설과 완전히 구분될 만큼 성애 묘사가 과감하다”며 “기생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을 북한에서 써낸 것 역시 홍씨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최인호, 김탁환씨 등 여러 작가들이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펴냈다.

북한판 ‘황진이’에 나오는 ‘에로틱한 장면’들은 현재 한국 소설의 성애 묘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정치범수용소가 산재한 통제국가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래 뵈두 내가 첫새벽 양기가 뻗칠 땐 열닷근짜리 저울추를 불두덩에 달아 놓고두 끄떡없는 어른이야.”

‘놈이의 거친 손이 진이의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으며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진이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김 교수는 “책 판매부수에 따라 인세를 받는 남한 작가와는 달리 북한 작가들의 주 수입원은 국가가 주는 월급이 전부”라며 “홍씨가 상업적 목적으로 이 같은 에로티시즘을 채용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북한은 미국과 긴장관계에 놓여 있지만 언젠가 개방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주민들의 ‘정서적 준비’를 위해 이 같은 소설의 출간을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황진이’ 이후의 북한 소설에선 이만한 에로티시즘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훈서적 김주팔 대표는 “통일부 승인을 이미 받았다”며 “1440부가량을 20일경 인천항을 통해 수입해 주요 서점들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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