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후기…' 조선 테크노크라트들의 꿈과 좌절

  • 입력 2004년 2월 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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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중인문화 연구/정옥자 지음/302쪽 1만5000원 일지사

한국사의 서술 방식은 여전히 왕조를 비롯한 지배층 중심의 서술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역사의 변혁기에 있어서는 특히 시대의 흐름에 역동성을 공급한 중간계층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중반부터 조선후기의 중인(中人)계층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중인을 나말여초(羅末麗初)의 육두품이나 여말선초(麗末鮮初)의 향리층에 비유한다. “육두품이 고려 건국의 참모 역할을 하고, 향리층이 조선 건국의 주도자들인 신진사대부의 모태로서 새로운 왕조를 여는 주체세력이 됐던 데 비해, 중인계층은 조선말기에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준비단계에서 굴절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역사적 맥락에 주목한다.

중인이란 조선시대에 양반(兩班)과 상민(常民)의 중간에 있는 신분층. 양반사대부에 버금가는 지식층을 형성해 의관(醫官), 역관(譯官), 율관(律官), 화원(畵員)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자신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는 한편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이들의 시도는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조선말기 서양세력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중인계층은 일찍부터 외국문물을 접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앞장설 수 있었다. 아울러 이들은 양반사대부에 비해 성리학적 지배체제에 연연해야 할 이유가 훨씬 적었기 때문에 자기 변신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먼저 18세기 위항(委巷·가난한 동네)문학에 대한 고찰을 통해 신분상승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위항문학운동에 영조 정조시대 탕평책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다. 아울러 이것이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양반문화의 하층 지향적 확산 현상이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19세기에 이 위항문학운동이 중인층의 성장과 변화라는 흐름과 함께 시사(詩社)라는 집단활동을 통해 문학운동에서 정치결사로 변모해 가는 과정도 소개했다.

현대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테크노크라트, 즉 의관, 역관, 율관, 화원 등이 같은 계급의식을 가지고 통혼(通婚)을 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이뤘다는 점도 조명했다.

나아가 저자는 “조선후기 사회에서 중인계층의 성장과 신분상승운동은 조선사회의 역동적인 자기 극복 과정”이며 “조선의 시대 사상이 성리학에서 북학사상으로 대체되는 사상사의 흐름과 맞물려 제기된 사회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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