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욕망의 ‘좁은 門’…앙드레 지드 출생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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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젊은 앙드레 지드는 해방됐다. 원시(原始)의 야성은 기독교 윤리의 굴레와 속박, 빅토리아시대의 숨 막히는 위선의 외피(外皮)를 벗겨냈다. 그것은 육체의 복권이었고 생명의 분출이었다. 1893년 그가 24세 때이다.

파리로 돌아온 지드는 자신이 지금껏 어두운 굴속에서 살아와 시력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분명하게 느끼게 된 것은 이 즈음이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억압된 본능을 북돋아주었다. “가장 큰 행복이란, 사랑하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갇혀있던 욕망과 충동의 토로에 다름 아니었고 ‘지상의 양식’과 ‘배덕자’는 그 문학적 결실이었다.

1895년 그는 사촌누이 마들렌 롱도와 결혼한다. 지드는 그녀에게 신앙과도 같은 사랑을 간직했으나 이때는 이미 알제리에서 ‘소년의 몸’을 경험한 뒤였다.

그는 마들렌에 대한 사랑을 ‘신비한 자력(磁力)’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가깝고도 영속적인 관계는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아내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 고뇌의 산물이 ‘좁은문’과 ‘전원교향곡’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문제작 ‘코리동’을 발표한다. 소크라테스 대화형식을 빌려 동성애 편력을 고백하고 이를 변호했다. 비록 동성애는 20세기 프랑스 지성계의 패션처럼 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코리동’의 출판은 그에게 파멸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를 외면했다.

그래서 다시 떠난 아프리카 여행은 바깥 세상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는 이때 프랑스 식민주의 폭정을 고발하는 ‘콩고여행’을 집필한다.

그는 194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의 동성애 성향 때문이었는지 한 신문은 수상자인 그의 인물 사진을 거꾸로 싣고 그 옆에 바로 된 폴 발레리의 사진을 나란히 게재했다. 그것은 ‘이단(異端)’에 대한 언론의 시위였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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