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빚어진 모방품 '청년 문학'…반역이 아쉽다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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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영상매체와 인터넷에 패했다.” “기성 작가의 창작집이 초판 2000∼3000부도 채 팔리지 않는다.” ‘문학의 위기’

가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는 요즘, 미래의 문단을 이끌고

나갈 ‘문청(文靑)’들의 기량은 어디만큼 닿은 것일까. 계간 문

예지 ‘문학동네’ ‘문학수첩’ ‘실천문학’ ‘파라21’ 등이 가을호를 통해 일제히 신인상(문예공모) 당선자를 발표했다. 예비작가들의 작품을 ‘최전선’에서 접한 심사위원들의 평을 바탕

으로 이들의 현주소를 짚어보았다.》

▼시…사회 문제의식 줄어들고 내면 묘사 유행 ▼

‘문학수첩’ 신인상의 예심을 맡은 시인 박주택,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현대시로 올수록 주체가 대상에서 경험하는 상반되고 복합적인 반응을 표현하는 아이러니 정신이 우세하기 마련인데, 이번 신인상 응모작들에서는 이와 달리 내면을 추스르고 들여다보려는 전통적인 서정의 원리가 단연 우세했다”고 평했다. 시인 자신의 내면과 사물, 세계와의 관련성을 노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반면 사회적 문제의식이나 실직, 생태, 환경 등 시류(時流)를 담은 시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파라21’에서 심사를 한 시인 김혜순은 “‘내면 묘사’가 유행하는 것은 사회적 발언에 목소리를 높였던 시절을 지낸 뒤 그간 억눌려 있던 욕망을 표출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묘사 방법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 문제”라며 “마치 일기(日記)처럼 ‘개인성을 드러내는 것이 시’라는 생각이 만연해있지만, 개인이 혼자 내지르는 비명을 누가 오래도록 들어주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각 계간지의 심사위원들은 “새로운 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기성의 관습과 표현 양식에 대한 반역 혹은 모험 정신’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시인 이재무(‘실천문학’ ‘시작’ 심사위원)는 “대단히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가는 분위기”라며 “새로운 것을 모색하려는 패기보다는 기교적인 완성도에 더 치중해 아쉬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소설…평범한 일상사 건조하게 풀어간것 많아 ▼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문학동네’ 문예공모 응모작들에 대해 “자잘한 일상사를 건조하게 서술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다”고 밝혔다. 일상을 바탕에 깔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우위를 점했던 여성소설이나 인터넷소설 경향의 작품은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

이런 작품경향에 대해 ‘문학수첩’ 예심에 참여한 소설가 서하진은 ‘일상성에의 매몰’이라고 정리했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 자기의식, 억압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억압이나 결핍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러다보니 가까운 곳에 있는 쉽고 사소한 이야기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건조한’ 글쓰기. 감각적인 글쓰기보다는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서술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영채는 “김영하 성석제의 소설에 배어있는 ‘세상에 대한 냉소’를 기본적인 정서로 공유하고 있다”며 “격정의 80년대를 뒤로 하면서, 왜 이야기를 쓰는지에 대한 절실함의 정도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거칠고 투박해도 개성이 확연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소설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 ‘잘 빚어진 모방품’이 아닌 도발적이고 참신한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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