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보치아선수 김준엽씨 “못이룰 꿈 없어요”

  • 입력 2003년 8월 13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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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 걸음 떼려고/얼마나 많은 노력과 준비했건만/막상 떼려 하니 겁이 나고/온몸이 떨려 자꾸만 망설여졌습니다.…그렇지만/걸어가야 합니다/그런 길이 나와도/처음 출발할 때 다짐한/마음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헤쳐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제14회 전국뇌성마비인 보치아경기대회가 열린 13일 경기 광주시 삼육재활센터 체육관. 개인전에 출전한 1급 장애인 김준엽씨(33·경북 경주시 외동읍·사진)는 입으로 공을 던지느라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입에 문 주걱으로 공을 들어 홈통으로 떨어뜨리는 힘든 동작. 그래도 그의 얼굴엔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자작시인 ‘처음 한 발걸음’의 마지막 대목처럼.

“보치아 경기는 나 같은 뇌성마비장애인이 집중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데 좋은 운동입니다. 후원자가 나서 앞으로도 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김씨가 보치아를 처음 접한 것은 10년 전인 93년. 태어날 때부터 손발을 쓰지 못해 입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김씨는 복지관의 소개로 보치아를 배웠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보치아는 흰색 표적구를 먼저 던진 뒤 빨간 공과 파란 공을 6개씩 굴려 표적구에 가까이 가는 순으로 점수를 매기는 경기. 그는 99년 장애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은메달까지 땄다.

불국사 근처 산골마을에서 어머니 김삼연씨(70)와 단 둘이 사는 김씨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혼자 올라왔다. 자신을 도와 줄 자원봉사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 차와 비행기를 번갈아 타야 하는 힘든 여정을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마쳤다. 다행히 경기가 시작된 뒤부터는 뇌성마비복지회에서 소개한 김성훈씨(26·동국대 경영학과 4년)의 도움을 받고 있다.

김씨는 사이버 공간에선 알아주는 시인. 15년 전부터 써온 시가 500편이 넘는다. 처음엔 입으로 펜을 물고 어렵게 시를 썼으나 93년 복지회로부터 컴퓨터를 기증받은 뒤엔 입으로 막대기를 물고 자판을 두드렸다. 97년엔 ‘하이텔 사이버 PC문인’으로 뽑혀 10개월간 PC통신에 시를 연재했고 홈페이지(myhome.hitel.net/∼kjod/)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돈을 모으면 시집을 내고 싶어요. 이미 시집 제목까지 지어 놨습니다. ‘못 이룰 꿈은 없다’입니다.”

광주=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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