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륵이야기'로 어린이연극제 돌풍일으킨 부부연출가

  • 입력 2003년 4월 21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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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연극 연출의 길을 걷는 배요섭(오른쪽), 이현주씨 부부는 '하고 싶은 연극을 맘껏 해보는 것이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나란히 연극 연출의 길을 걷는 배요섭(오른쪽), 이현주씨 부부는 '하고 싶은 연극을 맘껏 해보는 것이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부부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적인 공간에서 보아오던 서로의 ‘허물’이 자연스럽게 일에까지 연관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하는 부부는 종종 마찰을 일으킨다.

요즘 연극계에서 주목 받는 신예 극단 ‘뛰다’에는 같은 길을 가는 젊은 부부가 있다. ‘뛰다’의 연출자 배요섭(33)씨와 이현주(31)씨. 하지만 이들에게 서로의 허물은 각자에게 걸림돌 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이들 부부는 한 쪽이 연출을 하면 다른 쪽은 무대 감독을 맡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 어린이 연극 ‘하륵이야기’에서 남편 배요섭씨는 극본과 연출을 맡았고, 아내는 무대 감독을 했다. 서로가 놓친 부분을 따끔하고, 날카롭게 지적해 준다.

배우와 연출자, 배우와 배우의 커플은 더러 있지만 연출자끼리 부부가 된 일은 드물다. 사실 이들은 ‘연출자’ 라는 타이틀을 달기 전에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함께 다니던 99년 결혼했다.

배요섭씨는 종종 “왜 연구실 대신 무대를 택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배씨는 포항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진학했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 이른바 ‘명문대’ 출신 과학도인 그가 ‘배고픈’ 연극판에 뛰어든 것도 의아스럽고, 물리학과 연극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여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배씨는 “대학 때 풍물패 활동을 하며 공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짧게 대답한다. 이현주씨도 처음부터 연극을 택했던 것은 아니다. 이씨는 성균관대 국문과 출신. 역시 대학 시절의 동아리 활동이 ‘본격적인’ 연극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됐다. 97년 봄, 이들은 예술종합학교에서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연극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열정은 뜨겁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새로 생긴 극단에 별 수입이 있을 리 없다. 이현주씨는 “2년전 첫 공연을 마친 뒤 단원들이 수입으로 2만원씩을 나눠 가졌다”며 웃었다. 당연히 부업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전력’이 한 몫을 한다. 남편은 수학, 과학 등의 과외와 연기 지도를 하고, 아내는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생활은 힘들어도 연극할 땐 즐겁다.

‘뛰다’는 이들이 졸업하던 해인 2001년 초 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함께 창단했다. 배요섭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같은 학교 출신 13명이 모인 극단에 대표라고 해서 딱히 나을 것도 없다. 그저 친구로, 동료로 젊은 열정을 함께 불태울 뿐이다. 그래서 처음 극단을 만들면서 ‘수입의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정했다.

‘뛰다’가 주목받는 것은 단지 열정이나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연극에는 젊은 극단 특유의 ‘도전 정신’과 젊은 극단답지 않은 ‘노련함’이 배어있다.

우선, ‘뛰다’는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배우, 연출가 뿐 아니라, 의상 디자이너, 작가, 무대 미술 등 각자의 분야를 가진 단원들이 ‘비전공’ 단원들과 전공을 넘나드는 협의를 거쳐 소품을 만들고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 마다 충분한 연습 기간을 가지며,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친다는 점도 장점이다.

전국의 복지 시설과, 낙도의 초등학교 등을 돌며 ‘찾아가는 연극’을 한다거나, 재활용품을 이용한 소품을 가지고 ‘환경 친화적인 연극’을 지향한다는 점은 ‘뛰다’의 도전 정신을 보여준다.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는 연극 ‘하륵이야기’는 30일부터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재 공연한다. 다음달 5일까지. 평일 7시30분, 토, 일, 공휴일 3시, 6시. 1만5000원∼2만원. 02-525-6929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연극 '하륵이야기'는▼

30일부터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극다 '뛰다'의 어린이 연극 '하륵이야기' 사진제공 뛰다

…‘하륵이야기’는 ‘뛰다’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이 연극에서 배우들은 빈 병, 물통, 바가지, 양푼 등 일상적인 물건들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고 연주를 한다.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이현주씨는 “제대로 된 소리를 찾기 위해 1년 이상 실험을 거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지로 만든 탈이나, 한국적인 의상은 정겨우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작품으로 지난해 어린이 연극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연기상, 극본상, 미술상을 휩쓸었다.

‘하륵이야기’는 아이가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무 신령으로부터 ‘하륵’이라는 아이를 얻으면서 시작된다. 나무 신령이 정한 금기에 따라 하륵은 이슬만 먹어야 하지만, 노부부는 하륵의 간청에 못 이겨 쌀밥을 준다. 이 때부터 하륵은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괴물이 된다. 결국 세상을 다 먹어치우고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하륵을 달래기 위해 노부부는 스스로 하륵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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