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집은 자연스럽게 한국적 독창성을 살릴 수 있는 재료인 한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자연염색 한지를 다루면서 그는 자신의 영육에 배인 한국적 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된다. 마침내 붓과 캔버스를 아예 버리고 한지만으로 작업하는 ‘함섭 식(式) 한지 회화’를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 황토를 연상시키는 바탕 빛에 닥종이를 적신 후 찢거나 두드리고 짓이겨 붙인 다음 다시 단단한 솔로 힘차게 두드려 특유의 부조적 효과와 질감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방식이다. 화면에 포인트가 되는 색조나 조형도 오방색의 종이를 휙휙 던져 붙인 다음 다시 한번 솔로 두들겨 완성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그의 작업실에는 바퀴달린 커다란 나무판 위에 목욕탕 청소에 쓰이는 플라스틱 솔이 먼저 눈에 띈다. 그는 이 솔로 작품을 두드린다. 100호 짜리에는 무려 1만여번의 ‘두드림’이 들어간다고 한다. 작업실 한 구석에는 지방에서 사왔다는 고서들이 가득하고 화장실에는 닥나무 껍질을 삶을 때 쓰는 볏짚 태운 물이 양동이에 가득 담겨있다.
첨단과 인공으로 무장된 요즘, 철저한 수공업으로 만드는 그의 작품에는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 인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
그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뉴욕 아트페어, 프랑스 아트페어(FIAC), 일본 아트페어(NICAF)에 잇따라 참가했고 수년간 그의 작품을 눈 여겨 보던 해외 컬렉터들은 1998년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에 출품한 그의 작품 8점을 모두 사 가는 것으로 보답했다. 당시 밀린 주문 때문에 작품 2점을 서둘러 만들어 공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듬해 1999년 시카고 아트페어 출품작도 모두 매진됐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구매한 그의 작품은 미국이 150여점, 유럽이 100여점, 일본이 6점 등이다. 현재 그의 작품은 100호 한점에 1만6000달러선이다.
3월6∼1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그의 최근작들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열린다. 02-544-848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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