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지킴이]"女 항문환자 수치심까지 치료하죠"

  • 입력 2003년 3월 2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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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질환의 여성 전문의 삼총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오소향 원장, 이선미 원장, 이은정 과장.강병기기자arche@donga.com
항문질환의 여성 전문의 삼총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오소향 원장, 이선미 원장, 이은정 과장.강병기기자arche@donga.com
항문 분야의 여성 삼총사가 떴다. 이선미 인천 라파엘클리닉 항문외과 원장(36), 오소향 서울 강남서울외과 원장(34), 이은정 서울 대항병원 여성클리닉 과장(33). 이들은 다들 더럽다고 말하는 항문을 하루에도 수백 번 들여다보는 직업을 갖고 있다.

현재 항문 질환을 다루는 여성 전문의는 전국적으로 10여명. 그 중에 이들 삼총사는 단연 돋보인다. 항문병과 관련해 이 원장은 첫 여성 전문의, 오 원장은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fellow)까지 마친 첫 주자, 이 과장은 서울대 출신 첫 여성 전문의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문암을 빼면 사실 항문병은 치질이 전부나 다름없다. 치질은 크게 치핵, 치열, 치루 등 3종류로 나뉜다. 치핵은 대변을 볼 때 피가 나고 살점이 밀려나오는 질환. 치열은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나는 것이며 치루는 항문샘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나오거나 몽우리가 생기는 질환이다.

▽여자라는 이름으로=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치질환자가 많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드러내기 부끄러워 고통을 참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혼 여성들이 남자 의사에게 엉덩이를 내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여자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 때문인 지 이들을 찾는 환자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이들은 여성의 항문을 보고 있으면 ‘삶’이 보인다고 한다. 이 원장은 “치열에 걸린 미혼여성에게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며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그는 “항문 여러 군데가 동시에 찢어져 피가 나는 ‘다발성 치열’에 걸린 중년 여성을 보면 최근 이혼했거나 남편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 원장과 이 과장도 “치질 중 상당수가 마음에서 오는 병”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장 수술을 택하기보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권한다고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수술해도 재발한다는 것.

삼총사는 여성 의사를 무시하는 ‘무례한’ 남성 환자를 봐 주지 않는다. 오 원장의 사례 하나. 언젠가 대장 내시경을 찍으려던 남성 환자가 농을 걸었다. “언니, 왜 의사선생님 안 와요?”

오 원장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긴 술집 아닙니다. 언니 없어요. 저한테 진료 받지 않으려면 나가세요.” 남자 환자는 곧 조용해졌다고 한다.

▽왜 항문분야를 선택했나=오 원장은 대장 항문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 놈의 성질머리 때문에…”라고 말했다. 전공의 시절 여성 항문 환자들이 쉬쉬하는 것을 많이 봐 온데다 다른 사람들이 해 보지 않은 분야라는 생각에 도전했다는 것.

그러나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전공을 정하던 당시 7년 넘게 사귀던 남자친구가 외과를 반대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산부인과를 지원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자 이별을 슬퍼하기도 전에 전공부터 바꿔버렸다.

이 원장은 전공의 시절 지도교수가 파킨슨병 환자의 대변을 손으로 긁어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원장은 “저런 분이 참의사구나.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 원장은 며칠을 고민한 뒤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 과장은 남편의 반대가 있었다. 남편은 평범한 은행원. 아내가 가능하면 안정적이고 편한 분야를 택하길 바랬다. 그러나 이 과장은 외과를 강행했다. 지금 뛰어들면 개척자로 기억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장은 “나는 한다면 한다”고 남편에게 선포했고 남편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삼총사로 불리기까지=의사 가운을 벗었을 때 삼총사는 온갖 화제를 도마에 올리고 난도질을 해대는 평범한 여성들이다. 요즘은 오 원장이 15㎏을 뺀 게 가장 큰 화제다.

하지만 서로 보이지 않게 견제하던 이들이 이렇게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기까지는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1996년 한국여자외과의사회에서 만든 친목단체 ‘미도회’에서 오 원장과 이 과장이 처음 만났다. 그러나 당시 전공의 신분이었던 이들은 서로의 얼굴만 익힌 채 헤어졌다.

2000년 오 원장과 이 과장은 대장항문학회에서 다시 만났다. 이때는 소리 없는 기(氣)싸움이 팽팽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에서 전임의 공부를 하고 있던 오 원장은 “내가 학문적으로 한 수 위다”며 으쓱해 했다. 이 과장도 “진료 일선에 내가 먼저 나섰다”며 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이들은 이 원장이 항문질환 첫 여성전문의란 사실을 접하고 ‘선배’로 모시기로 했다.

항문질환에 일찍 뛰어든 이 원장은 ‘친구’ 하나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 4월, 수술에 필요한 특수장비가 없어 고민하던 중 대항병원의 이 과장을 떠올리며 환자를 보냈다. 그 후 서로간에 친분이 생겼다.

2002년 3월 이 원장이 병원을 옮길 때 환자들이 후임으로 여성의사를 추천해달라고 졸랐다. 이 원장은 이 과장에게 일부를, 오 원장에게 일부를 넘겼다.

이들은 이 때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삼총사는 요즘 ‘오결추’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유일한 미혼인 ‘오 원장의 결혼을 추진하는 모임’이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삼총사가 치질환자에게▼

▽매일 항문을 청결하게=얼굴을 씻듯이 항문도 매일 물로 씻어줘야 한다. 물의 온도는 40도 정도가 적당하며 4∼5분이 좋다.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씻는 게 좋지만 안될 경우 흐르는 물에 씻어도 된다. 비누나 소금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음식 골라서 먹어라=섬유질이 풍부한 야채를 많이 먹는 게 좋다. 과일도 좋지만 열량이 많아 다이어트중인 여성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섬유소가 풍부한 건강식품이나 영양제를 먹는 것도 방법. 또 하루에 8잔의 물을 꾸준히 마시는 것도 치질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변 볼 때 잊지 말 것=‘감’이 느껴진다면 지체 없이 화장실로 직행하는 게 좋다. 또 대변을 볼 때는 ‘일’에만 몰두하고 다른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것은 특히 금물. 대변을 보는 시간이 길어져 항문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또 일을 볼 때 너무 힘을 주면 항문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대변을 자세히 봐라=변이 가늘고 보기에 딱딱하면 항문병에 걸리기 쉽다. 또 검은 색이 많거나 검붉은 피가 섞여 나오는 것도 좋지 않다. 만약 변에 선홍빛이 감돈다면 대장암이나 치루가 의심되므로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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