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최인호, 역사를 좇는 글쟁이

  • 입력 2003년 1월 9일 17시 44분


소설가 최인호에게 역사는 돌처럼 굳어버린 화석이 아니다. 그에게 역사는 생생하게 살아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정설을 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제기를 할 뿐이지요. 역사라는 것이 딱딱한 학문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책 속에 특히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역사는 참으로 흥미로운 ‘존재’거든요.”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백제왕국의 영광을 복원한 ‘잃어버린 왕국’(1986),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위업을 그린 ‘왕도의 비밀’(1995), 아랑과 도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몽유도원도’(1996), 19세기 조선 거상 임상옥을 재현해낸 ‘상도’(2000)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역사적 관심사를 꾸준히 소설로 형상화해 왔다.

신라상인들의 무역루트를 따라 장보고의 흔적을 추적한 소설가 최인호./사진제공 KBS

역사의 ‘디테일’을 발로 쫓아온 작업이, 최근 소설과 다큐멘터리로 결실을 보아 또 한 장의 벽돌을 쌓아올렸다. 바로 소설 ‘해신’(전3권·열림원)과 KBS에서 방영 중인 신년스페셜 ‘최인호의 다큐로망 해신’(5부작).

시청률조사기관인 TNS미디어코리아는 “4일 방영된 1부 ‘신라명신의 비밀’은 8.2%, 5일 나간 2부 ‘붉은 바다의 신화’는 9.4%를 기록해 다큐멘터리로는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소설 ‘해신’은 역사의 어둠에 몸을 숨겼던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멸망한 백제국 출신의 미천한 신분으로 당나라로 건너가 자신의 운명을 바꿨던 장보고를 단순한 상인 이상의 휴머니스트이자 종교개혁자로, 바다를 다스렸던 해상왕으로 부활시켰다.

두 ‘열매’는 한중일의 바다를 한손에 움켜쥐었던 ‘바다의 신’ 장보고를 찾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터키 오만 이집트를 샅샅이 훑고 다녔던, 약 30만㎞에 이르는 대장정의 기록이다. 퍼즐조각처럼 흩어진 장보고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이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최인호는 과거를 현재로 끌어낸 것이다.

“의문이 떠오르면 현장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내 몸에 열정이 있고, 허락된 건강이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지요. 또 현장에서 답과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신비함마저 느낍니다.”

일본 다케다 가문의 시조가 신라사부로(新羅三郞)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시작한 취재는 3년여간 계속됐다. 일본에서는 국보인 ‘신라명신상’과도 조우하고, 9세기 신라에서 유행하던 향료인 유향의 원산지도 오만에서 찾아냈다. 또 이집트의 박물관에서 ‘신라’가 기록된 세계지도도 찾았다.

지난해 5월 중국 취재를 마치고 장보고의 뱃길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상에서 만난 최인호의 얼굴은 봄볕에 그을어 있었다. “중국 내륙을 다니며 겪은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기자는 왜 ‘충만함’을 느꼈던 것일까.

“내게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왕도의 비밀’에서 광개토대왕도, 근래에 찾았던 장보고도, ‘상도’의 임상옥도 다 우리 선조의 선조지요. 나는 굳게 믿어요. 우리 선조들인데 날 도와주겠지 하고요. 그런데 정말 이분들이 도와주세요.” (웃음)

한 지식인은 “우리나라 학자들은 최인호를 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최인호가 온 힘을 쏟아부어 하나씩 맞춰 가는 조각그림 덕분에, 역사는 그저 과거의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않고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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