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덕수궁 미술관 도상봉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7시 13분


도상봉 화백이 생애 마지막 그린 정물화(1977년 작).사진제공 덕수궁박물관
도상봉 화백이 생애 마지막 그린 정물화(1977년 작).사진제공 덕수궁박물관
정물화는 고리타분한 주제다. 꽃이라든지, 백자라든지, 식탁 위 과일 바구니에서 도대체 무슨 감동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도천(陶泉·도자기의 샘)도상봉(都相鳳·1902∼1977)의 정물화는 다르다. 대상이 볼 때마다 새롭다. 편하고 따뜻하다. 손녀이자 서양화가 윤희씨(41)는 “이번에 할아버지 작품을 다시 보면서 그리는 대상과 화가와의 진지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림이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뚫어지도록 오래 봐야 움직임이 감지되는 대상이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도상봉이 그린 백자를 오래 보면 미묘한 움직임이 전해온다. 극도로 단순화한 선 처리와 음영은 무한의 깊이를 전해준다. 작가가 대상에서 비밀스럽게 포착한 아름다움이 저것이었구나 하는 울림이 전해진다. 정물화라고 해서 대상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만이 갖고 있는 시선으로 사물을 재창조했다는 느낌이다.

비원풍경. 1973년작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미니멀리즘’이다. ‘비원풍경’(1973)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단순한 구도, 터치와 선 처리는 절제의 백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준다. 밑바닥에는 진하고 무거운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그의 페이소스는 슬픔이 아니라 나른함이다.

도상봉은 한국 서양화 1세대다. 일본 동경미술학교 출신인 그는 한국적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담고, 동양화 기법을 더 한 새로운 회화의 경지를 개척한 작가로 꼽힌다.

덕수궁 미술관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전을 마련한다. 12월 8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 명칭은 ‘균형과 조화의 미학’. 출품작은 70여점으로 1930년대 초기작에서 1970년대의 말기작까지 두루 나왔다.

작품은 인물화와 정물화, 풍경화로 크게 구분된다. 정물화는 꽃, 과일, 조선백자, 목기, 서양식 술병등이 화폭에 담겼고 풍경화는 그가 살던 혜화동 인근 모습이 담겨있다. 인물화는 1930년대∼50년대 작품으로 동경 미술학교 시절의 영향을 지니고 있던 때로 정확한 형태감각과 엄격한 조형미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함남 홍원 출신인 도상봉은 경신고보, 배화여고, 경기여중 교사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내며 후진을 양성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창설에도 참여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전 추천작가,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딸 문희(64·미국 거주)씨도 화가로서 그의 맥을 잇고 있다. 02-779-531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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