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는 없다" 불교-기독교 금기깨기

  • 입력 2002년 10월 8일 18시 49분


경전보다 나의 시각서 禪의 깨달음 다시 해석

최근 불교와 기독교의 ‘민감한 문제’를 깊이 있게 거론하면서 ‘신화 깨기’를 시도한 책들이 잇따라 나와 눈길을 끈다. ‘깨달음의 신화’(박재현 지음·푸른역사)는 선불교의 지향점인 깨달음에 대해,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이스라엘 핑컬스타인외 지음·오성환 옮김·까치)는 구약성경에 대한 신화를 벗기는 책이다.

선 불교에서 깨달음은 발설하지 말아야 할 금기다. 중생들은 그 앞에서 주눅들거나 유혹당한다. 깨달음에 관한 담론이 어떤 형태를 띠든 좌초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깨달음의 신화’의 저자 박재현씨(33·서울대 불교철학 박사과정 수료)는 “중생들은 깨달음이라는 거대 담론 앞에서 잘 길들여진 짐승처럼 고개를 숙이거나 정신을 빼앗겨 어쩔 줄 몰라 한다. 깨달음을 이루면 저당 잡힌 의식보다 훨씬 값진 것으로 돌려 받는다고 하지만 그 또한 일방적인 약속이라 미심쩍다”며 “선의 깨달음을 둘러싼 각종 신비와 모호성에 대해 따져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솔로몬 왕국은 허구”역사-신화 냉정히 분리

저자에 따르면 선 불교는 8∼9세기 중국 대륙의 혼란 와중에 기존 교학 불교가 쇠퇴 일로에 접어 들면서 태동했다. 이후 선불교는 붓다의 수제자인 마하가섭의 신비화를 통해 법맥(法脈)이라는 일종의 ‘불교판 족보’를 만들면서 ‘글’이나 ‘말’이 아닌 ‘마음’을 내세우면서 기존 전통 불교와 확연히 색깔을 달리 하면서 100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선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일종의 보물찾기였다. 깨달음의 편린이나마 취할 요량으로 승려들은 고비 사막을 오갔고 불경 속에 감춰진 의미를 간파하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 선은 좀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인도를 향해 떠나지 않았고 붓다의 음성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든 깨달음은 저마다의 깨달음이고 이 깨달음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에 필적할 만 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

저자는 경전 속 언어가 아닌 지금 ‘나’에서 비롯된 실존적 물음 속에서 선을 보자고 권한다. 선 불교와 기존 불교간의 사활을 건 원형 논쟁, 연기(緣起)와 공(空)에 대한 재해석, 돈오돈수 돈오점수 논쟁등과 관련한 독특한 시각등이 눈길을 끈다.

‘성경…’은 구약 성경을 단지 종교적 차원이 아닌 서양 문명의 원료를 탐사한다는 차원에서 고고학적 발굴이나 지리학, 역사학의 성과를 빌려 신화와 역사를 분리해 나간다.

필자들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인 조상은 외래 민족이 아니라 가나안의 토착민족이었으며 족장들도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것. 또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도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세 5경은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 유다 왕국의 요시야 왕 재위 때 처음 집필된 민족 영웅 서사시다. 이 서사시가 이스라엘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나라 발전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는 현실적인 목적에 따라 몇 세기동안 편집과 보완을 거쳐 히브리 성경이라고 하는 감동적인 민족 영웅담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 등에서 수 십년간 이뤄진 고고학 연구와 수십 차례의 발굴을 통해 얻은 증거를 토대로 일신교(一神敎)는 언제 탄생했는 지, 이스라엘인들은 어떻게 처음 약속의 땅을 점령하게 되었는 지, 예루살렘은 왜 고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는지 등을 설명해 준다.

저자들은 성경에 설명된 사상(思想)과 사건이 엮어진 시대적 배경 및 역사적 사실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독보적인 ‘문건’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화는 인간을 미망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사실이 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해 삶을 끌어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두 책은 신화 깨기를 통해 신화에 담긴 인간의 바람과 소망이 무엇인 지를 읽는 것이 미망(迷妄)에 좌초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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