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美 휴렛팩커드 新-舊 기업문화 충돌

  • 입력 2001년 12월 10일 18시 18분


휴렛팩커드(HP)의 최고경영자(CEO)이자 포천지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기업인으로 꼽혔던 칼튼 칼리 피오리나가 HP의 창업주인 휴렛 및 팩커드 가문과 정면 충돌, 쫓겨날 위기에 직면했다.

계기는 PC제조업체 컴팩에 대한 250억달러(32조원 상당)의 인수합병 계획. 피오리나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합병계획에 대해 휴렛 가문에 이어 7일 팩커드 가문도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이 두 가문은 전체 지분의 18%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일 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들에 대한 영향력도 커서 합병계획이 무산될지 모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8일 보도했다.

내년 2월 주주들의 합병 표결에서 총지분의 50∼60%만이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5∼35%의 반대표만 규합해도 합병이 좌절된다. 그럴 경우 지난해 가을 굴지의 컨설팅 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대한 인수시도에 이어 피오리나의 두 번째 인수 실패사례가 될 전망.

문제는 이번 컴팩과의 협상에서는 합병이 무산될 경우 무려 6억7500만달러(8700억원 상당)의 위약금을 물기로 합의했다는 점. 거액의 위약금을 배수진으로 칠 만큼 피오리나의 강력한 합병의지가 읽히지만 동시에 합병이 좌절될 경우 인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포천지는 최근호(24일자)에서 HP와 컴팩의 결합을 최악의 합병사례로 꼽아 피오리나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포천지는 △무엇보다 양 가문이 반대하고 있다는 점 △25억달러라고 주장하는 합병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가 2004년까지는 실현되기 어려운 점 △매출도 2003년까지는 늘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두 가문이 반대하는 이유는 보다 본질적이다. 창업자의 아들인 데이비드 팩커드는 “중복되는 직종에 있는 직원들이 최소한 1만5000명이나 돼 이들을 해고해야 한다는 점이 합병반대의 이유”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9일 전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HP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철학이며 종교라는 것. HP는 종업원들이 신나게 웃고 다니는 회사, 최악의 불경기에도 해고가 없는 회사, 최고경영자는 비행기를 탈 경우 항상 이코노미클래스만 이용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지난 여름에도 7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 충격을 줬다. 루슨트 테크놀로지 사장 출신의 피오리나는 화려한 디자이너 의상을 즐겨 입고 회사 제트기만 이용하며 인터뷰나 강연은 선호하지만 매년 HP 경영진이 참가해온 퇴직자들의 송년모임은 무시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리 포라스 교수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피오리나는 변화를 시도할 경우 부닥치게 될 강한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오리나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HP가 너무 사원 친화적인 분위기에 치우쳐 기술혁신을 제때 하지 못해 치열한 경쟁에서 뒤지고 있다면서 피오리나의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이야말로 HP에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맞서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양측의 대립을 ‘올드 실리콘밸리’ 대 ‘뉴 실리콘밸리’의 갈등으로 압축했다. 이 갈등은 결국 내년 2월 표싸움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양측의 치열한 전투가 두달간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인 빌 패커드의 아들 데이비드 패커드가 관리하고 있는 데이비드 앤드 루실 패커드 재단은 7일

<홍은택기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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