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어! 얼굴은 어디갔나…'얼굴없는 조각-회화' 전시회 충격

  • 입력 2001년 11월 18일 18시 39분


한계원 '사유공간', 높이 105cm
한계원 '사유공간', 높이 105cm
그림과 조각에서 얼굴이 사라졌다!

사람의 얼굴을 빼고 가슴과 몸통만 그린 그림, 얼굴과 몸통을 빼고 팔과 다리만 표현한 인체 조각 등 최근 얼굴을 지워버린 회화 조각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조각가 한계원과 서양화가 이봉수 김명수의 개인전 등. 작품에서 얼굴이 사라진 것은 한국 미술계 초유의 일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고 창작 동기를 묻느라 분주하다.

작가들은 왜 얼굴을 지워버렸을까. 이들이 이러한 파격을 시도한 동기는 ‘현대인의 얼굴에 대한 불신’이었다. 얼굴은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계원의 개인전(20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갤러리, 02-735-2655)엔 청동조각 ‘사유 공간’ 연작이 전시 중이다. 팔짱을 끼고 앉아 있거나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상념에 빠진 인간을 묘사한 작품들. 그러나 얼굴과 몸은 없다. 팔 다리만 있을 뿐이다.

작가는 “얼굴 대신 손발 만으로도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얼굴은 가식적이다. 손 발은 얼굴 표정보다 정직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작품은 몸통이 없기 때문에 이 몸의 주인공이 여성일지 남성일지, 궁금증을 더해준다. 이런 저런 궁금증으로 보는 사람을 정말로 사유에 빠뜨리게 하는 작품. 또한 삼국시대 금동반가사유상의 팔다리 곡선도 연상시킨다.

이봉수 '길위의 삶' 부분, 전체 130X160cm

18일까지 서울 전시를 마치고 21일∼26일 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053-420-8013)로 자리를 옮겨 전시에 들어가는 서양화가 이봉수의 개인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동적인 모습을 포착했으나 얼굴과 발은 모두 화면 밖으로 잘라냈다.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아이를 안고 가는 젊은 엄마, 분주한 모습의 샐러리맨 등 등장 인물은 모두 얼굴과 발이 없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익명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인다. “몸을 부딪히고 살아가는 게 우리 현실이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어깨부터 들이 밀고 얼굴은 뒤로 제친다. 얼굴보다 몸통이 먼저다. 이는 몸이 얼굴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개인전을 마친 서양화가 김명수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는 몸체를 좀더 클로즈업시켜 얼굴과 무릎 아래를 모두 화폭에서 밀어냈다. 그래서 가슴과 허리만 보인다. 김명수 역시 “그동안 인물화에서 너무 얼굴에만 주목했다. 얼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오히려 인간 의 본래 모습을 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없애버리니 현대인의 초상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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