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동네 가을호 특집 '다섯빛깔 작가群' 눈길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31분


2000년대 한국 소설의 지형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변화를 이끄는 신인 작가는 누구인가.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는 ‘변화하는 소설의 지형’이란 기획특집에서 신인 소설가의 지형도를 일별해 눈길을 끈다. 황종연 박혜경 양진호 김형중 등 비평가들이 90년대말부터 최근까지 등장한 ‘요주의 작가’ 13명을 골라 이들의 경향을 5개의 패턴으로 정리했다.

먼저, 김연수 박성원 정영문 그룹은 ‘시인 이상(李箱)의 후예들’로 꼽혔다(실제로 김연수와 박성원은 이상을 모델로 소설을 발표했다). 이들은 ‘분열된 내면을 가졌던 이상의 숭배자’(김형중)들이다.

둘째, 김종광 민경현 전성태 그룹은 ‘민중적 리얼리즘의 계승자’란 점에서 한데 묶였다. 멀리는 김유정에서, 가까이는 이문구의 토속성을 계승하는 작가들이다. 입심이 좋은 이들은 방언에 능하고 빈곤층 언어에 익숙하다.

셋째, 윤성희 천운영은 ‘현대 일상을 탐구하는 미시적 리얼리즘’(황종연)에 천착하는 작가로 묶였다. 동시대의 자잘한 삶의 체험을 거울처럼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능숙하다. 거기에 도덕적 동성애나 반(反) 문화주의 같은 도발적인 욕망을 풀어놓기를 즐긴다.

넷째, 류가미와 이평재는 ‘세속과 신화의 접경지대’(박혜경)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새로운 소설 형식을 탐구하는 작가군이다. 현실과 환상이 마주치는 혼란된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찾는 작품세계로 평가받았다.

필자 사정으로 평문이 실리지 않았지만, 마지막 그룹으로는 김현영 이만교 이지형이 있다. 언뜻 한 두름으로 묶기 힘들어보지만 ‘픽션의 유희, 유희적 픽션의 가능성’이란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모두 역사나 현실,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의 허를 찌르며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기획을 주도한 황종현 교수(동국대 국문과)는 “신인 소설가들이 불륜 일색이나 내면 탐구의 고백체 소설 같은 90년대의 타성에 젖지 않고 다채로운 시도를 통해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황 교수는 특히 선배 작가를 넘어설 수 있는 장점으로 △작품 소재를 몸으로 겪거나(윤성희 ‘레고로 만든 집’, 천운영 ‘숨’), △전문가 뺨칠 정도로 관련 자료를 탐색하는(김연수 ‘굳빠이, 이상’) 점을 꼽았다.

하지만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얻지 못하는 한 이런 미덕은 가능성에 그친다. 하성란 김영하 등 앞세대 작가들이 혜성처럼 등장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들의 분투는 초라해 보인다. 황 교수는 이를 ‘문학의 위기에 태어난 신인의 이중고’로 설명했다.

“앞 세대 작가만해도 선배 작가들이 이룬 문학과 싸우면 됐다. 신인들은 거기에 더해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매체와도 싸워야 한다. 여기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살아남은 작가가 한국 문학의 보루를 차지할 것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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