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구룡포]그곳에 가면 '살 맛'이 난다

  • 입력 2001년 3월 21일 19시 01분


봄볕 따사로운 사무실 창가에서 물끄러미 내다 본 도심의 빌딩 숲. 아지랑이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황사로 뒤덮인 뿌연 하늘, 계절의 바뀜에도 아랑곳 없이 언제나 그대로인 잿빛 거리. 죽어라하고 털어도 날아가지 않는 검은 교복에 묻은 분필가루처럼 짜증나게 하는 풍경이다. 무감각한 잿빛 공간을 탈출해서 몸과 마음을 바다와 하늘의 생기찬 푸르름에 흠뻑 물들게 하는 포항 영일만과 구룡포로 여행을 떠나보자.

◇장엄한 해돋이…생기 넘치는 파도…투박한 사투리…◇

봄은 봄인가 보다. 영일만 호미곶(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2리) 앞바다 수평선 위아래를 늘 수선스레 오르내리며 푸르디 푸른 동해의 하늘과 바다를 어지럽히던 갈매기마저 갯바위에서, 출렁거리는 물위에 앉아 미동조차 않는다. 고양이 털 끝에 걸려 하늘거리던 봄기운에 취한 탓인가.

호미곶. 최근 몇 년새에 ‘장기곶’이란 옛이름 대신 ‘호미(虎尾)곶’이라는 늠름한 새 이름으로 더 잘 불리는 반도의 동쪽 맨 끄트머리 바닷가다. ‘호랑이 꼬리’라. 어찌해도 일제가 남기고 떠난 ‘토끼 꼬랑지’라는 비하격의 치졸한 이름에 비길 바가 있겠는가. 만일 육당의 혜안이 없었다면 호미곶도 없었을 터, 한반도 모습을 연해주를 향해 발톱을 세우고 포효하는 호랑이의 형상에 비유한 그의 총명은 이 곳이 포효의 기상이 뻗쳐 나오는 그 곳, 꼬리임을 분명히 짚어냈다. 그 때가 지난 세기 초엽. 이후 근 100년 동안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 육당의 ‘호미’는 세기의 바뀜을 코 앞에 둔 1999년 그 해에야 비로소 사람들 입에 회자되더니 그 해 말 ‘호미곶 해맞이 광장’ 조성을 계기로 97년(1903년 장기곶 등대 준공이 기준)만에 비석에 각인된 확고한 지명으로 새로이 등장했다.

호미곶 여행의 출발지는 언제나 구룡포항(포항시 구룡포읍)이다. 어업전진기지답게 항구는 늘 셀 수 없이 많은 어선으로 가득하다. 삶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 구룡포항 한중간의 영일수협 어판장을 찾아보시라. 대화퇴(大和堆·독도 북동쪽 공해상의 비교적 수심이 얕은 해저지형)어장까지 사나흘씩 걸리는 뱃길을 마다 않고 나가 거센 바다와 싸우고 돌아와 뱃전에서 생선궤짝을 부리며 환히 웃는 어부들의 거침없는 웃음에서, 경매 끝난 어물을 좌판에 가득 올려 두고 목청 돋워 쉰 목소리로 손님 부르는 구룡포 아지매의 억세지만 정겨운 경상도 말투에서 삶에 대한 뜨거운 정열을 느끼고야 말 것이다.

구룡포를 떠나 호미곶으로 가는 길(912번 지방도로). 바다는 오른 편에서 길 옆을 떠날 줄 모른다. 해안가 얕은 언덕을 굽이굽이 오르내리는 길 아래의 바닷가로는 작은 포구와 검은 갯돌해안, 금빛 해변이 띄엄 띄엄 나타난다. 가다가 포구마을이 보이거든 반듯한 도로는 버리고 갯가 둑 위로 난 좁은 동네길로 차를 몰자. 바다 풍경이 좀더 가깝게 다가와 정겹게 느껴진다. 이렇게 달리기를 14㎞. 해안 가까운 수면 위로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거대한 조형물(왼쪽 사진)이 나타난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과 그 앞바다에 조성한 조각이다. 지난 세기의 갈등과 불신을 불식하고 새세기에는 화합과 화해를 기약하는 ‘상생(相生)의 손’상.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또 다른 한 손과 마주 보고 있다.

손 조각 앞의 ‘영원의 불 성화대’에는 두 세기를 기념하는 ‘불씨함’(3개)이 놓여 있다. 20세기 마지막 해넘이와 21세기 첫 해돋이 때 채화해 가져와 보관한 것들로 변산반도 일몰, 호미곶 일출,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섬의 일출 불씨다. 광장 옆 바닷가에는 하얀 등대와 팔각형의 건물이 있다. 1903년 불을 밝히기 시작한 장기곶등대와 국내에서 유일한 등대박물관(휴관중)이다. 6월초 재개관될 예정.

◇전망 좋은 방◇

갈매기 떼 노니는 바다와 갯바위, 구룡포 해수욕장의 금빛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구룡포읍 삼정리(구룡포읍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는 전망 좋은 해안가 언덕에 좋은 방이 있다. 방안에서 해맞이를 할 수 있는 ‘언덕 위 하얀 집’ 모습의 민박(원룸형)인데 모두 다섯 채(방 9개)가 있다. 요즘은 1박에 3만∼4만원선. 큰바다회센타(주인 박순자) 054―276―0704

◇여행정보◇

▽포항시 홈페이지(city.pohang.kyongbuk.kr)〓호미곶의 날짜별 일출시간과 주요 도시를 잇는 교통편,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대한 정보 제공 ▽찾아가기〓서울∼대전∼영천(경부고속도로)∼안강(28번국도)∼포항(7번국도)∼구룡포(31번국도)∼호미곶(912번지방도로) 총 447㎞.

◇패키지 여행상품◇

승우여행사(02―720―8311·www.seungwootour.co.kr)와 고산자답사회(02―732―5550)는 호미곶에서 해맞이 후 구룡포에서 은복탕을 맛보는 무박2일 여행상품(출발 24일 밤 서울)을 판매중. 5만5000원. 보경사 12폭포도 들른다.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구룡포 별미◇

◇담백한 과메기에 소주 한잔, 시원한 복탕으로 속풀이◇

●구룡포 과메기〓최근 구룡포는 ‘과메기 익는 마을’로 더 잘 기억된다. 과메기란 청어가 많이 잡혀온 구룡포에서 태어난 겨울에 먹는 전통 자연식품. 배를 따 내장을 꺼내는 것 외에는 일절 가공하지 않은 자연상태로 바람에 말리며 기름을 제거하고 발효시켜 반쯤 건조한 생선. 요즘은 청어 대신 꽁치를 사용하는데 담백한 맛도 맛이려니와 DHA가 풍부하다고 알려진 등푸른 생선을 생(生)으로 먹는다는 점에서 건강식품으로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구룡포산 과메기를 알아 주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건조한 해풍과 낮은 기온 등 과메기 숙성에 알맞은 기후 때문이다. 껍질을 벗겨 생미역과 실파, 묵은 김장김치에 싸서 먹는데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요즘은 진공포장돼 연중 구해 먹을 수 있다. 구룡포읍내 영일수협 어판장 앞 유봉상사(054―276―8054)에서는 구룡포 과메기 생산조합의 과메기(진공포장)를 택배판매한다. 한 두름(20마리)에 1만원. 세 두름 이상 주문시 무료 택배. 백화점과 대형할인 매장에서도 살 수 있다.

●구룡포 복탕〓싱싱한 복어가 수시로 잡혀 오는 구룡포항은 과메기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알만한 술꾼은 다 아는 복어탕 항구다. 휴일이면 아침일찍부터 경주 포항에서 속풀이하려는 술꾼이 몰려 올 정도다. 구룡포 복탕의 중심은 지금은 사라진 ‘복골목’. 6·25 때 함흥 피란민의 손맛으로 시작된 구룡포 복골목의 50년 역사와 시원한 국물맛은 지난해 복골목 철거 전만 해도 일제 때 지은 키낮고 허름한 구옥에서 풍겨 나오는 정취와 어울려 반세기를 한결같이 사랑받아 왔다. 그 정취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선 새 건물 1층에 복골목 내 다섯식당 중 하나인 동림식당(주인 이대완·054―276―2333)이 최근 문을 열고 구룡포 복골목의 복탕맛 전통을 잇고 있다. 참복은 약으로나 쓰일 만큼 귀해서 복탕에는 주로 오징어잡이 어선에 잡혀온 밀복(연안산)과 은복(원양산)이 쓰인다. 이곳 복탕은 콩나물만 넣고 하얗게 끓여 내 시원한 맛이 일품. 밀복탕은 1만원, 은복탕은 6000원, 복수육은 1만5000∼3만원. 복탕을 시키면 잡어회 가자미밥식해 가자미구이 등 반찬도 예닐곱가지가 함께 곁들여진다. 연중무휴. 구룡포 영일수협어판장 건너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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