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문화' 파괴-(下)국내서의 반달리즘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57분


◇외세에 뽑히고…제손으로 부수고…일제 광개토왕비문 조작 만행

한반도에도 불행했던 문화 파괴의 역사가 존재한다. 일제시대까지는 외세 침탈에 의한 문화재 파괴와 약탈, 즉 타의적인 반달리즘이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엔 개발에 의한 파괴, 즉 우리 스스로에 의한 문화 파괴가 주를 이루었다.

한반도에서 외세에 의한 문화재 파괴는 고려시대였던 13세기 몽골이 침입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238년 세 번째로 고려를 침략한 몽골은 경주의 신라 황룡사 9층탑을 불태워 없애버렸다. 황룡사탑은 높이 약 80m로 추정되는 거대한 목탑이지만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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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몽골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 중이던 고려 초조대장경(고려시대에 처음 제작한 대장경)도 불에 타 없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에 의한 문화재 파괴가 자행됐다. 왜군들의 무차별 방화로 인해 왕조실록을 보관하는 4대 사고(史庫·한양 춘추관, 성주, 전주, 충주) 가운데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왜군들은 조선의 도공인 심당길(현재 일본에서 활동중인 도예가 심수관의 조상)과 이삼평을 일본으로 납치해가기도 했다.

구한말에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일제에 의한 약탈이 자행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귀중도서 등 문화재를 약탈하고 불을 지른 것. 최근 반환 논란이 되고 있는 외규장각도서도 이 때 프랑스군이 빼앗아간 것이다. 이 때 프랑스 군의 방화로 귀중 도서 4700여권과 왕실 귀중품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1894년에는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광대토대왕비 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인들은 비면 전체에 석회를 바르고 조작 문구를 새겨 넣어 일본에 유리하도록 바꾸었다. 문화재 파괴 차원을 넘어 ‘역사 파괴’였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은 함북 길주에 있던 북관대첩비를 강탈해갔다. 북관대첩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의병장 정문부가 왜군을 물리친 내용을 기록한 비석.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하던 일본은 최근 이 비석을 보이지 않는 외진 곳으로 옮겨놓았다.

일제시대에 이르자 일본인들에 의한 문화재 파괴와 약탈은 더욱 극성을 부렸다. 1907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 정부 궁내대신 다나카는 무력을 동원, 경기 개풍군(현재 개성시) 경천사 10층석탑(14세기)을 마구 해체해 도쿄로 빼돌렸다.

일제는 1906∼10년경에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던 평양시 대동구역의 조선시대 누정 애련당(愛蓮堂)을, 1915년엔 경복궁 자선당(資善堂) 건물을 통째로 뜯어 일본으로 무단 반출했다. 비슷한 시기 일제의 한 고관은 석굴암 내부의 소형 5층 석탑을, 또다른 일본인 일당은 불국사 다보탑 기단부의 네 귀퉁이에 있던 4개의 돌사자 중 3개를 훔쳐 달아났다.

일제는 1943년 ‘유림의 숙정 및 반(反)시국적 고적의 철거’란 비밀 명령을 통해 민족의식이 담긴 비석들을 모조리 파괴하거나 매장해버렸다. 전남 해남의 이순신 명량대첩비, 충남 아산의 이순신신도비(神道碑) 등 20여점의 비석이 그렇게 이 땅에서 사라져갔다. 일제는 이외에도 강원도 오대산 사고의 조선왕조실록 등 소중한 전적류를 약탈해갔다.

1914∼15년경엔 누군가가 경주 굴불사터 사면석불의 본존불 머리부분과 오른쪽 협시불을 떼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국전쟁 때도 많은 문화재들이 불타 없어졌다. 전남 장흥의 보림사, 경남 진주 촉석루, 금강산의 신계사와 장안사 등. 또한 6·25 직후엔 지리산 빨치산에 의해 전남 송광사의 백운당 청운당이 소실되기도 했다.

물론 일제시대 때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적지 않았다. 간송 전형필, 수정 박병래 등은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 일제에 의한 무단 반출을 막았다. 일제가 경천사 10층 석탑을 강탈해가자 당시 언론을 통해 이를 폭로, 1918년 결국 ‘환수 항복’을 받아낸 영국인 베델과 미국인 헐버트의 헌신적인 노력도 기억할 만하다.

1960년대 고도 성장기에 국토 개발로 인한 문화유적 파괴도 부끄러운 반달리즘의 역사다. 서울은 물론 경주 부여 공주 김해 등 유서 깊은 고도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고도의 모습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최근 논란이 됐던 서울 풍납토성 유적 파괴나 경주 경마장건설 계획 등이 대표적인 예다.

문화 파괴는 도를 더해 96년 경기도 화성 백제유적 발굴현장, 2000년 풍납토성 발굴현장을 깔아 뭉개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달초엔 도굴범이 사리를 훔쳐가기 위해 국보 54호인 전남 구례 연곡사의 부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고도 유적 파괴를 막기 위해선 ‘고도 보존 특별법’ 제정과 같은 근본적이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일제시대 때 지어진 근대건축물을 철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제가 지은 건물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가 끌어 안고 가야 할 소중한 역사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에는 중국 지안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들에 대한 훼손도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고구려 벽화는 중국 땅에 있어도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정부가 나서 중국 측과의 협조를 통해 고구려 벽화 보존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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