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과西의 벽을넘어]고대 양형진교수…물리학통해 불교 재해석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49분


“물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불교를 보니 언젠가 와 봤던 곳에 다시 온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불교는 본성상 물리학과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물리학을 통해 불교에 대한 현대적 이해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고려대 물리학과 양형진(楊亨鎭·43) 교수. 양 교수가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 유학시절 고체물리학을 공부하며 박사학위과정을 거의 마무리해 가던 1988년경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동료의 안내로 찾아갔던 시카고의 불타사(佛陀寺)에서 한국의 홍선(弘禪·62) 스님을 통해 불교의 세계를 만났다.

대학시절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불교가 이 때 한용운이 ‘님의 침묵’에서 노래했던 것과 같이 “‘날카로운 첫 키스’처럼 다가왔다”고 그는 말한다. 이 무렵부터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혼자서 불교 경전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은 자연의 현상을 탐구하는 데 반해 불교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며 진리를 밝혀 나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초월적 실재나 신, 불멸의 영혼 등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세계 안에서 고통을 해결하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 입장이고 보면, 이 세계의 대상 자체를 정확히 봄으로써 세계의 기본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물리학과 불교 모두의 기본 요건이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는 알기 어려운 자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도록, 물리학을 위시한 자연과학은 자연을 좀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특히 우리의 삶을 철저하게 고뇌하면서 그 실상을 봄으로써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유추해 내려는 불교에 대해, 자연과학은 바로 현대과학이 축적한 지식을 통해 세계의 실상을 정확히 보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천장에 달려 있는 전등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천장이 전등을 들어 올려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천장이 전등을 들어 올려 주고 있는 만큼 전등은 천장을 끌어내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천장을 집의 벽면과 기둥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천장이 집의 벽면과 기둥을 끌어내리고 있지만 벽면과 기둥이 내려앉지 않는 것은… 이처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무한히 계속 적용해나가면 하나의 전등이 천장에 걸려있기 위해서는 전 우주가 동시에 이 사건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전 우주적 상호 참여, 전 우주적 상호 투영을 상입(相入)이라 하고, 이것이 바로 연기(緣起)의 모습이지요.”

뉴턴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이렇게 불교의 연기론을 설명해 주고 길가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 우주 전체가 연관돼 있음을 가르쳐 준다. 양 교수는 이렇게 자연과학적 접근을 통해 자연의 진리를 설명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인간이 38억년 생명 진화의 역사 중 한 구성원일 뿐임을 지적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윤리관을 끌어낸다.

이제 양 교수는 물리학의 지식을 동원해 불교경전을 재해석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양형진 교수 약력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1981년)

△미국 인디애나대 물리학 박사(1990년)

△고려대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교수(1992년∼·고체 물리이론 물리철학)

△저서:‘과학으로 보는 불교(가제)’(장경각에서 2001년 출간 예정)

△논문:‘불교와 과학에서 평등과 차별, 중도(中道)’, ‘화엄으로 본 생명세계’, ‘생명세계에서의 연기론’, ‘물리학을 통해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등 다수.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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