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곳에 사는가]구리시 '아치울'마을 이이화씨

  • 입력 2000년 10월 1일 18시 34분


역사학자 이이화씨 부부
역사학자 이이화씨 부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구리 쪽으로 자동차로 5분만 달리면 왼쪽에 계곡을 따라 조그만 마을이 펼쳐진다. 배밭과 아차산에 둘러싸인 곳에 시냇물을 따라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서 있다. 서울이 옆에 있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별천지인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마을. 재야 사학자 이이화씨(64)가 사는 곳이다.

그가 이 곳에 자리잡은 지도 벌써 20년째. 한국사 연구에 푹 빠진 그가 이 곳을 찾은 것은 조용히 글만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골 기질로 뭉친 그는 81년 정신문화연구원을 그만두고 아치울로 왔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조용하고, 글쓰기에는 이 곳 만큼 좋은 곳이 없지요. 서울과 가까워 생활에 큰 불편도 없습니다.”

◇밤샘 집필 마치고 오솔길 산책

정작 그가 아치울을 택한 이유는 좋은 공기만은 아니었다. ‘마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에게 ‘마을’은 설레는 단어다. ‘자연 속에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곳’, 바로 시골이고 고향인 셈이다.

“자연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지요. 동네를 기웃거리다 만나는 이웃에게 술 한 잔 권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아치울 마을입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 열여섯살 때 충남 부여 은산면 곡부리 시골 집을 뛰쳐 나온 그이기에 시골 동네에 대한 향수가 더 사무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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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이 곳에 오고 나서 그와 비슷한 목적으로 이사오는 사람이 하나 둘 늘었다. 그 가운데 절반은 학자와 예술가들이다. 화가, 연극인, 문인, 한복디자이너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에게 한문을 배우러 다니다 이 마을에 반해 이사온 소설가 박완서씨도 그 중 한 사람. 이렇게 모여들다 보니 그가 생각하는 마을은 저절로 이뤄졌다.

그는 밤에 글 쓰는 습관 때문에 오전에 잠을 잔다. 밤샘 집필을 마친 그는 늦게 본 딸 응소(14)와 함께 아침 7시경 산에 오른다. 대문을 나서 오솔길에 들어서면 바로 산이다.

그는 산을 오르내리다 멍하니 땅이나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많다. 글 구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숲 속에 있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보다 그냥 자연을 느끼는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에겐 이런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응소는 겨우 중학교 1학년이지만 혼자 소설을 쓴다. 피를 이어받은 덕분도 있겠지만 아치울 마을에서 자라난 까닭이라는 게 이씨의 아내 김영희씨(53)의 생각이다.

◇"10년 작업 한국사 이곳서 마무리"

요즘 이씨는 다시 ‘마을’을 생각한다. 이따금씩 들어서는 고급 주택들에서 아치울의 ‘작은 난개발’ 조짐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계곡과 숲, 그리고 어울려 사는 인심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다음달에는 돼지 한 마리 잡아 놓고 마을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도 열 계획이다.

그는 필생의 역작을 쓰고 있다. 도서출판 한길사에서 출판키로 한 24권짜리 한국통사 ‘이이화 한국사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는 것. 그는 생활사 중심의 이 책을 10년의 작업 끝에 2004년 완간할 예정이다. 이 책에는 아치울에서 맛볼 수 있는 우리네 마을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이다.

<구리〓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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