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성석제 해학-요설로 '제도권 허점' 난타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그동안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재미를 느꼈고 그 재미를 작품속에 옮겨왔죠. 이번에는 관계보다 사람 자체에 관한 얘기로 관심을 돌렸어요.”

글쎄, 사람 얘기 아닌 소설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지만, 작가 성석제(39)의 새 창작집 ‘홀림’(문학과지성사)이라면 주저없이 ‘사람에 관한 소설집’으로 부를 만하다.

10권이 넘는 창작집, 장편, 시집을 통해 발랄한 입담과 해학을 펼쳐온 작가는 새 책에서 노름꾼 술꾼 제비족 정신지체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늘어놓으며 온갖 잡담과 허풍, 요설을 펼쳐보인다.

“제도권 입장으로 보면 뭔가 모자라는 사회적 부적응자들이죠. 이런 인물들을 보여주면 꽉 짜인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노름 술 춤 등 특이한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해학과 요설은 기세를 얻는다.

‘꽃 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에서 도박사는 “진정한 노름꾼은 남이 칼을 갈면 같이 갈아준다”며 도박의 도(道)를 설파한다. ‘소설쓰는 인간’에서 작가는 사교춤의 세계를 각주로 가득찬, 거의 학문적인 경지로 그려낸다. 이 겉보기의 진지함이 독자의 폭소를 유발하는 ‘장치’가 된다.

“서구의 피카레스크(악한소설)전통에 맥이 닿아 있는 것은 아닙니까”하고 기자가 딴죽을 걸자 작가는 “피카레스크에는 사회의 비리를 고발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나는 고발에 관심이 없어요. 경찰서 가기도 싫은데….” 라며 가볍게 빠져나갔다.

단편 ‘홀림’은 작가 최초의 자전적 작품. 주인공은 잡식성의 독서를 통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고, 자라면서 자신을 의식속에서 분열시킨다. 분열된 ‘쌍둥이’들은 하나씩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속으로 ‘출격’한다. 주인공은 소설의 기초가 된 ‘메모’에 ‘예술과 인생의 불가분성을 증명할 잠언’이 들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소한 ‘어처구니’라도 들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어처구니? 95년 장편소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부터 그가 애호하는 단어. ‘턱없이 큰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전에도 나와있다. 그렇다면 그 ‘어처구니’는 문학에 생명을 불어넣는 상상의 힘을 뜻하는 것일까.

하지만 상상력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내는 순간 대상은 원래와 달라져 보이고야 만다. 그러기에 그는 ‘방’에서 ‘관찰하는 순간 대상은 깨어져 버린다’고 암시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통하는 화두다.

“정말이에요. 뭔가를 표현하고 나서 다시 보면 처음과 다릅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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