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집]정호승 '눈물이 나면…'/잠언같은 목소리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시인 정호승(49)이 일곱번째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비평사)를 내놓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97)와 뒤이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98)처럼 단언(斷言)으로 들리는 제목. 간명한 형식속에 잠언(箴言)이나 경구(警句)와 같이 삶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고자 하는 목소리도 앞선 두 시집과 다름이 없다.

만물 생령을 평등히 여기는 불교적 세계관은 그의 시세계에 한결같다. ‘날이 밝자 아버지가/모내기를 하고 있다/아침부터 먹왕거미가/거미줄을 치고 있다/비온 뒤 들녘 끝에/두 분 다/참으로 부지런하시다’(들녘)

거미와 인간의 부지런함이 같을 진대, 주어진 삶에 제대로 값하지 못하는 인간은 오히려 미물만 못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간의 비루함, 존재의 비굴함에 대한 경고가 알지 못하는 사이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새점을 치면서/어린 새에게 묻는다/나 같은 인간은 맞아 죽어도 싸지만/어떻게 좀 안되겠느냐고/묻는다’(새점을 치며)

책장을 넘기는 눈길은 시인 김정환의 발문에서 멎는다.

김정환은 전작(前作)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대해 ‘대중적이라 질(質)이 떨어지는 지경을 보였다’고 비판하면서 “새 시집은 시인이 의식적 무의식적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도전이자 모험으로 고발과 반성이 균형을 이루며, 인생과 죽음의 혼탁함을 전화(轉化)시켜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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