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황지우-이윤택의 '47세 장르변신'

  • 입력 1999년 8월 17일 19시 19분


《황지우와 이윤택. 시와 연극이라는 본령을 벗어나 ‘전방위적’으로 자기 역량을 시험해온 47세 동갑나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40대에 이미 ‘문화 권력’이라는 소리를 듣게된 두 사람이 80년 폭압의 시대를 배경으로 새로운 장르의 개척에 나섰다. 시인 황지우는 ‘실천문학’가을호에 5·18을 배경으로 한 첫 시극(詩劇) ‘오월의 신부’를 발표했고, 극작가 연출가 등으로 활동해온 이윤택은 정보기관의 고문과 인간파괴를 그린 희곡 ‘가시밭의 한송이’를 첫 장편소설로 개작해 10월 출간할 예정. 두 사람으로부터 작품의 창작의도와 배경을 들어본다.》

▼시인 황지우/시극 '오월의 신부'발표▼

80년 광주는 우리 모두가 가진 족쇄다. 한 지역이나 시대에 가둬둘 수 없다. 어떻게 보편적 인간의 드라마로 녹여낼까. 고민이 많았다.”

황지우의 시극 ‘오월의 신부’는 뮤지컬용 대본이다. 내년 5·18을 즈음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예정.

작업을 제안한 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동료교수인 작곡가 이건용이었다.

“2000년이면 그해로부터 20주년이 된다. 우리 청춘을 고스란히 흔들어놓은 사건에 대해 입을 닫고 넘어가선 안된다”라며 시인을 채근했다. 처음엔 칸타타(대규모 합창곡)를 구상했지만 대중적 전파력을 감안해 뮤지컬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요 등장인물은 사제, 시민군 대변인, 대학 총학생회장, 마이크를 들고 선무공작을 펴는 여성 등 네명. 실존의 인물에 기초하고 있지만 네 사람을 엮는 관계는 허구다. 희생을 줄이려는 사제의 고뇌, 시민군 내부의 정치상황, 젊은 주인공 셋을 엮는 애정과 갈등의 끈…. 세 요소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축을 이룬다.

“최근 그리스의 장엄한 비극에 매료돼 왔다. '80년 광주'야 말로 어떤 그리스 비극보다 고전비극적 요소를 웅대하게 갖추고 있는 사건이다. 민중의 코러스가 제의(祭儀)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할 수 있었다.”

‘5월의 신부’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도 성격은 다르지만 일종의 제의다. 진압군의 투입 전야, 주인공 두사람의 혼배성사. 도청 도지사실의 흰 커튼은 신부의 면사포가 되고, 성결한 의식과 닥쳐오는 비극의 암시가 교차되며 극의 절정을 이룬다.

▼연출가 이윤택/소설 '가시밭의 한송이'출간▼

연극은 객관적 상황에 집착해야 하고, 시는 지나치게 상징적이다. 개인과 세상 사이의 불화와 갈등을 푸는 데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가시밭의 한송이’는 소설과 극을 오가는 방황의 산물이다. 350매 분량의 중편으로 썼다가 발표를 미룬 채 희곡으로 개작, 금년 출간된 ‘이윤택 희곡집’에 수록했다. 희곡은 다음달 8일부터 산울림소극장에서 윤석화 주연으로 공연되며, 같은 이름의 장편이 10월 출간된다.

“90년대는 신념이 상실된 시대였다. 누구나 관념으로 몰입했고, 언어는 타락했다. 그 타락을 견딜 수 없어 연극의 현장속으로 들어가 버렸던 거다.”

그러므로, ‘가시밭의…’는 이윤택이 가진 신념의 산물이다. “누가 80년대를 청산됐다고 하는가. 당시의 독소가 아직 세상에 그득한데 세상은 온통 자포자기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가 싶었다. 이작품은 청산되지 않은 80년 상황에 대한 나의 발언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80년 고문을 당하고 해직됐다 복직돼 모스크바로 출장온 기자와 그와 함께 고문당해 불구가 된 채 유학생활 중인 전직 동료 여기자 윤.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흔을 간직한 40대. 둘은 밤을 새우면서 끊임없이 섹스를 한다.이야기를 하고, 울고 웃으며 서로를 탐한다. 외설이 되지 않겠느냐고? 외설과 비외설을 가르는 것은, 섹스에 삶의 진실이 묻어나오느냐에 있다. 이 작품에서 섹스는, 아픔을 씻고 마음의 맺힌 매듭을 푸는 행위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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