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얽힌 뒷얘기]조승훈

  • 입력 1999년 6월 11일 19시 36분


좋은 책이름은 주제를 상징적으로 잘 반영하면서도 독자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 책을 잘 팔리게 하는 그런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책이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또 그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들이 많다.

노벨상 수상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인 ‘고도를 기다리며’(1952년)도 이런 책들 중의 하나. 작가 자신이 이 수수께끼같은 책이름에 대해 입을 다물어버려 설이 난무했다. 그 중 하나.

작가가 산책을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보고 “무엇들을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은 “매년 거행되는 자전거경기를 보고 있는데 모두 가장 늙고 느린 선수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책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M 캐빈의 소설 ‘우편배달부는 언제나 벨을 두 번 울린다’(1934년)에도 웃지 못할 뒷얘기가 숨어 있다. 무명의 작가가 부진런히 글을 썼는데 그의 원고는 언제나 출판사들로부터 퇴짜를 받았다. 그것을 딱하게 생각한 우편배달부가 출판사로부터의 퇴짜통지를 배달할 때는 언제나 초인종을 두 번 울려주는 배려를 했다. 드디어 어느 날 이 배달부는 초인종을 한 번만 누르면서 우편물을 배달했다. 이 우편물은 평소의 두툼한 원고뭉치가 아니라 크누프출판사에서 보낸 얄팍한 출판통지서였다. 책이름은 이같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조지 오웰의 ‘1984’(1949년)는 원래 제목이 ‘유럽의 마지막 사람’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너무 삭막하게 여긴 출판사에서 책 완성단계의 해인 1948년의 마지막 숫자 48을 84로 바꾸어 제목으로 달았다고 한다. 당시 40년 후에는 그런 사회가 정말 올 것이란 두려움을 느끼면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4∼1869년)도 처음 책이름은 ‘1825’였다. 쓰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20년 전 나폴레옹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바람에 한때 ‘1805’로 바뀌기도 했지만 다루는 내용이 수세기 동안 러시아 사회의 중심적 주제인 전쟁과 평화이어서 책이름도 이것으로 낙착됐다고 한다.

조승훈(출판평론가)tongbss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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