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박근혜씨 비망록 「마음 다스리기」

  • 입력 1998년 11월 20일 18시 59분


‘아침 진지를 드신 후 아버지는 잠시 울음을 터뜨리셨다.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려고 너를 두셨는가 봐”’(74년9월14일의 일기 중)

‘대통령의 딸’로만 기억되는 사람,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가 되기 위해 겨우 스물두살의 나이에 ‘소탈한 생활, 한 인간으로서의 꿈은 집어던져야 한다’고 일기속에 꾹꾹 눌러 써야했던 박근혜(46·한나라당 의원)씨. 그가 최근 두권의 책을 펴냈다.

74년부터 93년까지의 일기를 발췌한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와 수필집 ‘결국 한줌, 결국 한점’(부일). 수년전 낸 책을 증보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만큼 제 생에서 큰 고통은 없었습니다. 첫 출간때는 80년대 일기부터 공개했는데 이번에는 지나온 날들을 그 시점부터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소용돌이치는 한국현대사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그의 글들이 감춰졌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두 동생 서영 지만의 ‘가슴아픈 일’들에 관한 기록도 “장성한 동생들에게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싣지 않았다.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밖의 죽음’으로 잃고,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리는 무상한 인심을 견디며 무섭게 삶의 이면을 배워야했던 나날들. 그의 글들은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자신을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던 한 사람의 ‘마음 다스리기’ 행적이다.

“글쓰기는 막막한 제 삶의 등대같은 것이었습니다. 책을 낼 때의 바람도 제 경험이 슬픔과 괴로움을 겪는 분들에게 동병상련의 위로가 됐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부모님은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분’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시대가 내 생각과는 달리 평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그. 부모의 유업을 잇고자 지난 4월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틀림없이 일찍 결혼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심장을 떼어낼 수 없듯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늘 가슴 한켠에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을 이룬들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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